[월가리포트] "개혁늦어 어려워졌지만 제2 IMF는 허튼소리"뉴욕에 들려오는 최근 한국경제에 대한 소식은 흉흉하기 짝이 없다. 제2의 IMF(국제통화기금)사태가 곧 닥쳐올 것이라거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최근 방일(訪日)이 일본에 돈을 빌리러 간 것이라는 식의 얘기까지 나돌 정도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경제 소식은 「경제위기」란 단어를 빼놓지 않고 등장시키고 있다. 고유가, 반도체 경기 후퇴, 포드자동차의 대우차 인수 포기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외국인 주식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빠져나가고 있다는 등 반갑지 않은 소식에 뉴욕의 주재원 및 교민들 의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정을 잘 아는 뉴욕 현지 전문가들의 반응은 좀 다르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은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IMF체제 이후 외환위기라는 급한 불을 끈 후에 경제개혁을 시작하는가 싶더니 경제지표가 호전되자 어느새 흐지부지하고 있는게 이미 예상되었던 대로라는 반응이다.
「혹시나」 한국이 경제개혁을 해낼 수 있을까 했지만 사회통합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한국이 「역시나」 경제개혁이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자가 지난 2월 뉴욕에 부임했을 때 뉴욕의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지부진한 경제개혁을 우려했는데,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그때와 다를 바없는 상태이니 이같은 지적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국에 대한 대출 가산금리인 「김치 스프레드」가 여전했던 당시에 서울에서는 IMF 졸업식에 도취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제2의 IMF사태 운운하는 경제위기론에 대해서는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항상 위기발생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현재 상황이 또다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냐는데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면 1,000억달러규모 외환보유고의 절반이상이 줄어들고 외환위기, 경제위기가 다시 닥친다는 얘기에 이르면 코웃음을 치는 실정이다.
한국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이 모두 단기성 펀드들이고, 삼성전자같은 회사가 1~2년안에 망하느냐고 반문한다.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한 외국인은 한국경제에 대한 관심보다 반도체 주가에 대한 관심이 더 많고, 오늘 매도한 투자자가 값이 내린 며칠후에 다시 매입하는게 주식투자자의 생리아니냐고 덧붙인다.
「예상대로」 경제개혁을 제대로 해내 좋은 성적을 낼만한 실력까지는 없는 한국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낙제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라는게 뉴욕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당장 낙제는 면하더라도 계속 숙제를 뒷전으로 미루다간 언젠가 다시 낙제의 위기로 몰리겠지만.
어찌보면 「위기」라는 단어가 우리에겐 너무 익숙하다.
심지어 총체적 위기란 말도 유행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당시 위기론을 제때 주장하지 못한 자책 때문인지, 요즘엔 걸핏하면 「경제위기」다. 당시에 위기란 말을 너무 금기시해서 위기를 당했듯, 이번엔 위기란 말을 남용해서 같은 결과를 초래할까 우려된다.
/뉴욕=이세정특파원 BOBLEE@SED.CO.KR입력시간 2000/09/2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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