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3년 4개월 만에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금강산으로 떠나는 이산가족들의 얼굴에는 성급한 통일의 기대감도 보인다. 남북 화해무드 조성 이벤트에 주식시장에서도 남북경협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성급할지 모르지만, "통일은 대박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성큼 와 닿는 듯하다.
한반도에 화해의 봄바람이 조심스럽게 불고 있다면 중국은 양안관계의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며칠 전 롄잔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은 78세의 노구를 이끌고 베이징을 찾았다. '봄이 왔으니 옛 친구를 찾는다(走春訪友·주춘방우)'라는 이름을 붙인 롄잔의 방중은 2005년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과 국공회담을 개최한 후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앞서 중국과 대만은 지난 11일 난징에서 역사적인 양안 장관급 회담을 열고 정례적인 장관급 접촉을 합의하기도 했다. 노 정치인의 걸음에 화답을 하듯 올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극진한 환대를 하며 대만을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양안동포가 모두 한가족이고 혈통이라며 대만의 사회제도와 생활방식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대만의 현 정치체제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시 주석은 대만의 독립반대라는 공동의 기초가 무너지면 양안관계가 과거로 돌아갈 것임을 경고했다. 대만의 자체적인 정치·사회는 존중하지만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에서는 한발도 후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근 중국이 대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많은 양보를 하는 듯 보인다.
양안모델, 우리 통일에 적용은 의문
마잉주 대만 총통의 중국 방문이 추진된다는 언론의 보도에 이어 시 주석이 마 총통과의 정상회담 얘기를 먼저 꺼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마치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에서 벗어나 대만을 한 국가로 인정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물론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것은 없다. 롄잔 명예주석의 회담에 동행한 인물의 입을 빌렸지만 중국의 공식입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리고 대만 독립반대를 분명히 강조한 시 주석의 공식발언에서 보듯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
양안관계를 보는 한국 내의 시각은 '부럽다'란 말로 요약된다. 일부 학자들은 양안관계 모델에서 한반도 통일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한이 3년간 전쟁을 했듯이 중국과 대만도 22년 동안 국공 내전을 거친 후 30년 동안 서로에게 포격전을 하며 적대관계를 지속했다. 어린 시절 본 만화 똘이장군의 상대인 무시무시한 괴물이 북한이듯이 중국과 대만도 학교에서 상대방을 악마로 표현하며 상호비방에 열을 올렸다. 한반도나 양안이나 출발은 비슷했지만 양안이 1992년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하되 해석은 각자 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며 다른 길을 걸었다.
양안관계 발전의 틀은 우리에게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구이존동(求異存同·다른 점을 가지고 같이 공존한다)' '선경후정(先經後政·경제가 우선이고 정치는 다음이다)' '선이후난(先易後難·쉬운 일이 우선이고 어려운 일은 다음이다)'으로 대표되는 유연함과 실용성은 한반도 통일의 우선순위가 남북경제협력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대통령이 통일이 대박이란 말까지 한 마당에 현 정부의 남북경제협력의 청사진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 아쉽고 양안 관계가 부럽긴 하다.
그렇다고 양안관계 모델을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협력하고 합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도해야 하지만 양안 모델이 서로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반도에 적용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양안관계에서 분명하게 얻어야 할 지혜는 중국과 대만 모두 원칙을 지킨 것이다.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수 있는 원칙인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서로의 정치적인 변화의 위기에도 깨지는 않았다.
남북관계 원칙 정립 우선돼야
다시 시작된 남북화해 무대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건 결코 아니다. 정부가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에 변함없는 원칙을 만들기를 바란다. 특히 북한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아직 정전 중인 한반도에서 평화 없이 관계개선은 또 한 번의 정치적 쇼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대박은 잘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90%의 노력과 10%는 노력이 낳은 부산물이라고 한다. 운이 아니다.
지난해 말 단둥 황금평 경제특구에서 만난 조선족 기업인의 말이 기억난다. "중국은 황금평에 절대로 첨단기업을 넣지 않을 겁니다. 남 좋은 일을 왜 합니까" 북한도 결국은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할지 새겨둬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