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7일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금융실명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중징계를 내리기로 함에 따라 신한금융지주의 경영 공백 사태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상훈 사장이 대출 관련 배임 및 고문료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돼 최근 이사회의 직무정지 결정을 받은 상태인데다 신한지주의 사내이사인 이백순 신한은행장 역시 재일교포 주주의 기탁금 수수ㆍ처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라 회장에 대한 중징계가 내려진다면 신한지주의 경영진은 모두 손발이 묶이는 셈이 된다. 아직은 중징계 방침만 통보된 것이지만 만약 그 수위가 직무정지로 내려진다면 신한지주는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최종 징계수위가 수위가 다소 낮은 문책경고로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라 회장은 현재의 임기(2012년 3월)는 보장 받는 대신 향후 3년간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 사실상 시한부 선고이자 ‘알아서 사임하라’는 통보를 받는 셈이다.
◇제재심의위원회가 최종 변수=금감원의 중징계가 직무정지나 문책경고 어느 쪽이 됐든 라 회장에겐 금융인으로서의 사형선고나 다름 없다. 다만 아직 라 회장에겐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 금감원이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제재심의위원회’절차가 그 것. 제재심의위에선 실명제 위반 혐의에 대한 라 회장측 소명을 듣고 금감원의 징계방침을 최종적으로 확정할 지 아니면 수위를 낮출지 여부 등을 결정한다.
신한지주측은 이 같은 소명의 자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결정적 단서를 잡고 있다고 하지만 해당 내용이 실명제법이나 관련 규정에 어긋나는지에 대해선 우리측 의견이 다르다”며 “제재심의위에서 금감원측 방침과 다른 결론이 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사실상 금융당국이 ‘라 회장 죽이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권에선 신한사태를 기회로 삼아 금융권에 영을 세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한지주를 본보기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마녀사냥ㆍ형평성 논란=일각에선 라 회장에 대한 중징계 방침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라 회장의 실명제 위반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수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수장으로서 차명계좌를 만들어 개인자금을 운용하는 식으로 실명제를 위반했다면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겠지만 그것이 소속 금융회사나 투자자, 예금주에게 손실을 끼친 것도 아닌 데 경영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만약 회사의 자금을 횡령했거나 잘못된 투자 판단으로 기업을 위기에 몰아넣었다면 경영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일이지만 라 회장건은 그런 차원으로 보기엔 억울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