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신중현의 낡은 기타

"좋은 기타는 무조건 소리가 잘 나는 기타가 아닙니다. 잘 치면 잘 치는 대로,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소리가 나는 솔직한 기타가 좋은 기타지요." 무대 위에는 화려한 조명도 현란한 장치도 없다. 하얀 양복을 입은 늙수그레한 뮤지션과 까만 몸체를 그에게 기대고 있는 기타가 있을 뿐이다. 뮤지션은 매일 서는 무대를 처음 서는 무대인 양 어색하게 거닐며 관객에게 앞으로 들려줄 연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그는 혼자 말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듯 쉼 없이 기타를 만지작거려 기타도 함께 중얼대는 듯했다. 공연이 무르익자 뮤지션은 자신이 메고 있는 기타에 대해 설명했다. 미국의 유명 기타 회사 '펜더(Fender)'로부터 전설적인 음악을 남긴 음악인으로 선정돼 헌정 받은 것이란다. 그의 요청대로 몸체를 까맣게 프렛(Frets)을 넓게 만든 맞춤 기타였다. 하지만 새로 받았다는 기타에는 커다란 흠집이 나 있다. 기타 주인은 "낡은 사람에게 새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일부러 스크래치를 내 달라고 주문했다"며 웃었다. 기타 주인은 이미 지난 2006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공연에서 팬들은 다시 그의 공연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 흘렸다. 그런데 은퇴한 지 3년이 지난 2009년 기타를 받았다. 그는 대중의 성원 덕에 받은 기타이므로 연주로 보답하는 게 도리로 생각된다며 지난해 7월부터 다시 무대에 섰다. 세종문화회관과 제주문예회관 등 전국 순회공연을 마친 그는 현재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한 달간 공연 중이다. 공연은 매끄럽고 세련되진 않았지만 솔직하고 열정적이다. 중년의 관객들은 그들대로, 뮤지션을 잘 모르지만 부모님을 따라 온 어린 관객들은 또 그들대로 옛 사진첩을 꺼내보는 듯한 기분에 젖었음직하다. 기타와 열정만으로 두 시간을 채운 그의 연주는 화려한 조명과 현란한 무대장치로 장식된 그 어떤 공연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음악을 한다는 소신 하나로 평생을 지낸 그의 기타에 새겨진 '트리뷰트 투 신중현'이라는 글귀가 오롯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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