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豫則立, 不豫則廢

지난 4월 한국 경제에 위기가 오고 있다고 법석이더니 요즘 들어 상황이 조금 좋아진 것으로 국내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북한 핵 문제라는 전례 없는 악재 때문이다.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며 투자를 결정하는 해외 투자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경제 대국의 불황이 가까운 시일에 호전될 것으로 보이지 않고,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확산은 어느 나라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국내 카드회사를 중심으로 한 국내 소비자 금융의 문제, 최근에 다시 불거진 기업의 투명성 문제,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각종 무역 규제 등 앞으로의 위기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40여년간 우리 경제는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놀라운 발전을 이뤄냈다. 60년대 우리의 경제 문제는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문제가 아닌 기아와 생존의 문제였다. 미국의 잉여농산물(PL480)에 국가의 식량 문제를 의지하던 시기였고, 직장다운 직장이 거의 없던 시기에 실업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경제협력자금 6억 달러에 의지해 제조업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고, 곧 이어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건설과 서비스 사업을 중심으로 소위 `월남 경기`의 붐을 타고 경제난이 해결됐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감당 해야 한다는 국민적 결의와 외부의 긍정적 여건이 잘 조화를 이뤄 극복된 과정이다. 1970년대 초에 한국 경제는 1차 석유 파동과 베트남 패망으로 또 한차례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경제 부총리는 위기를 막기 위해 미국 은행 서울 지점장들에게 1억 달러를 빌려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할 만큼 긴박한 사정이었다. 이 암울한 시기에 다행스럽게 중동 건설 붐이 타올랐다. 우리 기업들은 중동 건설시장을 석권했고, 오일 머니가 한국 경제를 위기에서 살려냈다. 건설업을 중심으로 건설기자재 수출, 노동시장의 활성화로 관련 산업이 활력을 갖게 되고, 경제의 큰 도약을 이뤄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국가 경제 발전에 오로지 매진했던 강력한 정부의 의지와 지원이 있었고, 사업 기회는 반드시 포착해서 기업을 일구려는 기업가의 굳은 결의가 있었다. 근로자들도 어떠한 열악한 환경이라도 감내하겠다는 강인한 근로 의욕을 보였다. 이런 것들이 중동 건설붐이라는 외부의 여건에 잘 적응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도 우리 경제는 2차 석유 파동과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아주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해외 은행차관을 연장하기 위해 당시 재부부 장관이 외국은행을 방문하여 협조를 부탁해야 할 만큼 어려웠다. 이 시기에는 중동 특수와 같은 외부적인 별다른 호재 없었다. 하지만 20여년간 쌓아놓은 생산산업 기반 위에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발 드라이브, 기업의 왕성한 기업가 정신, 세계적으로 근면하다는 평가를 가진 근로자의 근로정신이 잘 융화되어 위기를 극복했다. 비록 위기 극복에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무역수지도 사상 처음으로 흑자를 내고,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루며,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바라 보게 됐다. 90년대 중반에도 산업기반이 취약해지고, 공동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우리의 기초산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반도체와 철강의 호황에 가려져 경제 밑바닥의 어려운 현실을 보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의 수출산업이 경쟁력을 상실했고, 내실 없이 세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뤄진 마구잡이 해외 차입으로 97년의 외환 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는 대내적인 능력과 준비가 미약했고, 외적인 호재가 전혀 없는 가운데 맞이한 위기였으며, 따라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경제 위기는 느닷없이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불길한 전조가 여기저기서 나타난 후 위기가 닥쳐오는 것이다. 주의 깊게 관찰하면 위기를 미리 알아서 극복 방안을 준비할 수 있다. 옛 성현의 말씀에 모든 일에 미리 예비가 되어 있으면 성공하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실패한다고 했다(凡事 豫則立, 不豫則廢). 당장 위기가 오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외부의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포착할 만한 우리의 핵심 역량이 있는가의 여부가 중요하다. 과거의 위기 극복에 성공했던 渶訶?거울삼아 우리의 핵심 역량을 키우는데 경제 주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언제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현명하게 극복하도록 항시 대비해야 할 것이다. <김영만 주미 한국상의 명예회장 >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