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8ㆍ31대책’의 핵심 사항이던 종합부동산세가 시장안정에 기여하지 못한 채 세입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부메랑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매물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다주택 보유자들은 버티기에 들어갔고 이 같은 움직임이 이어진다면 집주인들이 세입자에게 세금부담을 떠넘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가을 전세난에서 촉발된 시장불안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부터 종부세 통지문이 발송되기 시작했고 다음달 1일부터는 자진신고 및 납부 절차가 이뤄짐에도 강남권 거래시장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내년부터 이어질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연말이면 매물이 늘고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던 정부의 예측은 이미 물 건너 갔다는 평가다.
정부의 11ㆍ15대책 발표 이후 일부 재건축아파트의 호가가 1,000만~2,000만원가량 떨어지기는 했지만 고가 주택 보유자 대부분이 당분간은 잉여 주택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분위기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종부세 부과일 기준이 지난 6월1일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안 팔았던 사람은 이번 종부세 부과에도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집값이 오르면 세금부담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도 매물이 늘지 않는 원인이다. 역삼동 S공인의 한 관계자는 “집주인들 중 내년에 다시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며 “양도세ㆍ종부세에 대한 압박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누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주인들이 늘어나는 세금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팀장은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돌려 본인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길 우려가 있다”며 “올 가을에 일어난 전세난도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실제 시장에서는 내년 초 이사철을 맞아 전ㆍ월세 혼란이 발생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대치동 H공인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대책의 영향으로 시장이 잠잠하다”면서도 “방학을 앞두고 세입자 문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 강남권의 입주물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세입자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2007년 상반기 강남ㆍ서초ㆍ송파ㆍ강동 등 서울시내 강남권에서 입주하는 아파트(주상복합 포함)는 모두 2,595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상반기 8,489가구의 3분의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내년 상반기 서울 입주물량도 9,348가구로 올해 같은 기간의 2만1,860가구에 비해 크게 줄어 세입자들의 선택 폭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세가 상승과 전세 매물 감소로 인한 월세 매물 증가가 시장불안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박 대표는 “부담이 늘면 일부 세입자는 아예 중소형 주택의 매수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며 “올 가을 중소형부터 집값이 오르며 중대형 평형으로 이어졌던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