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해양업체들의 2·4분기 실적 발표로 조선해양산업의 존립에 대한 강한 우려들이 제기됐다. 사실 설계변경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등장하면서 생산비용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훨씬 이전부터였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돌발변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 가장 중요한 유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유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발주자들이 오일·가스를 생산할 해양플랜트를 서둘러 가져갈 유인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통상 조선해양 수요는 중장기 큰 등락을 보이는 만큼 시장침체기에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조선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선 부문의 시황침체를 이전에 확보한 건조물량과 고유가로 호조를 보인 해양플랜트 수요로 메우면서 생존에 대한 경각심이 느슨해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 긴 해운침체기의 중간쯤이었던 1985년 건조선박 성능에 대한 사소한 이유로 인도가 거부돼 끝내 부도위기에 몰렸던 대한조선공사의 사례를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최근 진행된 해양플랜트의 경우 발주자 요구가 있었지만 확실히 잘할 수 있는 조립공정이 아니라 전 공정을 책임지는 수요자 맞춤형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당한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에 내몰렸다. 국내 기업이 건조하던 해양플랜트들은 보다 극한 해양환경에 설치될 대형 플랜트들이었기 때문에 수십년 이상 경험이 축적된 발주자와 엔지니어링업체들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에 맞닥뜨리게 됐지만 결국 국내 기업의 책임이 된 것이다. 더구나 유가가 낮아 정석대로 건조가 이뤄졌어도 발주자가 빨리 인도받아 현장에 투입할 유인도 낮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 조선 대형 3사가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를 접어야 할 것인가. 답은 아니오이다.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지금껏 이어온 차별화 전략 궤도를 수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선박 건조의 노하우를 접목할 수 있는 해양플랜트 건조는 매력적인 고부가가치 사업이다. 물론 기존 건조방식이 아니라 필요한 역량을 확충해 전 프로젝트 공정에 대한 실질적인 장악이 가능해져야 한다. 부족한 기본설계 역량을 축적해 외부에서 아웃소싱을 하더라도 확실하게 업무를 장악해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필요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 또한 대형 3사 간 주력 영역을 부분적으로 차별화해 국내 업체들끼리의 경쟁 강도를 낮추는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 유가는 에너지 혁명을 이끄는 듯했던 셰일가스와 오일에 대한 투자도 주저하게 만드는 수준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낮은 유가는 조만간 글로벌 수급상황에 맞춰 적정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며 오일 메이저들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원유 및 가스 생산 스케줄에 맞춰 후속 해양플랜트를 순차적으로 발주할 것이다. 또한 국내 대형 3사 외에 대형 해양플랜트를 건조할 뾰족한 대안이 없어 상당 부분 국내 업체들이 수주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다시 낭패 보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글로벌 대형 해양플랜트 시장에서 당장 한국 외에 대안이 없는 듯보이지만 싱가포르가 건조능력 확장을 모색하고 있고 중국도 '제조업 2025'를 통해 해양플랜트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근 지역에 원유 및 가스 생산현장이 많아 자연스럽게 클러스터가 형성된 싱가포르는 해양플랜트 개조 강국이며 신조능력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중국은 자국 해역에 원유생산을 활발하게 진행할 광구들이 있으며 국영에너지업체들은 해외 광구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어 상당한 자국 수요가 기대되고 있다. 이것이 국내 대형 3사가 강도 높은 대응을 해야 할 이유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