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8월 12일] 기업인 긴장시대

좋은 일이 많이 있으면 안 먹어도 배부르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 모른다. 기업과 기업인들에게는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 시기가 바로 그런 때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당선자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거침없는 행보에 기업과 기업인들은 한껏 고무된 것이다. 기업인들의 입에서는 환상적 분위기,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기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어디 갔나?


“참여정부 내내 주눅들고 불만 가득했던 재계의 표정은 일순간에 기쁨과 기대로 바뀌었다. ‘투자에 애로사항이 있으면 직접 전화해도 좋다’ ‘기업인이 존경 받는 분위기를 만들겠다’ ‘고용을 많이 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상공인들이야말로 진짜 애국자다’ ‘공항귀빈실은 정치인보다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인들이 써야 한다’(중략) 더욱 기쁜 것은 기업인들에게 껄끄럽기 짝이 없는 존재인 공정거래위원회ㆍ검찰ㆍ국세청 등까지 나긋나긋한 자세를 다짐(?)한 것이다. 인수위는 공정위 업무보고에서 ‘너무 고압적’이라고 일침을 놓았고 법무부와 검찰에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수사로 기업활동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국세청은 ‘기업을 섬기는’ 세무행정을 약속했다. 업무성격상 기업을 친하게 대할 수 없는 기관들까지 친기업을 외치고 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바야흐로 기업인 전성시대가 활짝 열린 느낌이다”. 그 당시 썼던 ‘기업인 전성시대’라는 제하의 칼럼(2008년 1월16일자)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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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황은 그때와 정반대다.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싶을 정도다. 대통령이 대기업의 사회적 역할,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강조한 것을 시작으로 경제 장관들, 방송통신위원장, 청와대 참모 등 정부의 대기업 비판이 줄을 이었다. 공정위는 담합조사에 착수했고 검찰과 국세청이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대기업을 나무라지 않으면 마치 큰 일이라도 날 듯한 분위기다. 대통령이 ‘기업의 자발적 상생’으로 의미를 정리하고 기업들도 상생강화 조치를 모색하면서 조금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기업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정부의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어 몸을 바짝 낮춘 채 전전긍긍이다. 기업인 긴장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대기업에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해줄 만큼 했는데 누리기만 했지 투자와 고용창출 등 제 할 일에는 소홀했다고 여길 만하다. 그러나 경기회복의 온기가 서민과 중기에게 퍼지지 않는 것을 대기업 탓으로만 돌리며 압박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기업 팔 비틀기로는 정책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위세에 눌려 마지못해 하는 상생경영이 오래갈 리 없다. 오히려 경영위축을 불러 경제에 악영향을 줄 공산이 크다. 기업 때리기보다는 자발적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대기업도 상생경영 되돌아봐야

기업들로서는 정부의 돌변이 억울할 것이다. 열심히 뛰어 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했는데 이제 와서 두들겨대니 말이다. 그러나 불평만 할 게 아니라 그동안 상생경영과 사회공헌활동에 미흡함이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의 기업인들이 거액기부에 대거 나선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계가 당선자의 친기업적 행보에 투자와 고용확대로 박자를 맞춘 것은 반길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영투명성 제고 등 정도경영이 필요하다. 과거의 경영행태가 계속되면 기업친화적 정책은 역풍을 맞을 것이다. 기업인 전성시대의 지속 여부는 기업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당시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었는데 그게 현실로 나타난 것 같아 안타깝다. 경제활력을 위해서는 기업인 전성시대의 재도래가 필요하다. 그게 기업인 하기에 달려있다는 것은 그 당시도,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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