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접고 영원의 세계로…
故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 영결식
강동효 기자 kdhyo@sed.co.kr
‘5월의 소년 영원의 세계로 떠나다.’
지난 25일 향년 97세의 일기로 타계한 금아(琴兒)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렸다. 소설가 조정래, 시인 김남조,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등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고(故) 피천득 선생이 세상과의 ‘인연’을 접고 영면에 든 오늘은 그의 아흔 여덟번째 생일날이기도 하다.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영결식에서 조정래 씨는 “고인은 다른 이들에게 온유하게 대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칼날의 예리함으로 대하며 검소한 삶을 실천했던 선비 같은 분”이라며 “오래 사셨으되 아무런 티 없이 가을 하늘처럼 사셨기 때문에, 존경하는 선생님이 이승 여행을 끝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픔보다는 부러움이 앞섰다”고 고인을 기렸다.
제자들을 대표한 석경징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사에서 “높이 소용돌이치던 세상을 살면서도 한결같이 정결한 모습을 보인 분”이라며 “선생님은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복사판 그림 한 장, 베토벤 전집 하나 소유하지 않으셨던 무소유의 삶을 사셨다”며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해인 수녀는 ‘피천득 프란치스코 선생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조사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5월 속에 있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차남 수영 씨는 “아버님이 지난 4월 서울대 교정을 한 번 거닐어보고 싶다고 부탁하셨는데 쌀쌀한 날씨 때문에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며 수필 ‘5월’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유해를 담은 관을 버스에 싣고 영결식 직전 서울대 교정을 한 바퀴 돌면서 고인의 ‘마지막 소원’을 풀어줬다.
이 날 영결식은 고인이 가톨릭 신자였던 까닭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의 주례로 미사형식으로 진행됐다. 조 주교는 “평생 순진무구한 삶을 사셨던 고인은 벌써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라며 축복했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에 안치됐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난 피천득 선생은 10세에 모친을 여읜 뒤 삼촌 집에서 성장했다. 시인 주요한의 주선으로 상해 후장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한때 교사로 근무했고, 해방 직후인 1946년 경성대학(현 서울대) 예과 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시집 ‘금아시문선’, ‘산호와 진주’, 수필집 ‘인연’ 등이 있다.
입력시간 : 2007/05/29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