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이헌재 小考

그는 재무관료의 옷을 벗은 후 18년 동안의 공백을 스스로 「낭인시대」라 규정했다. 대우계열 회사 전무와 신용평가회사 사장을 역임했지만 자신의 본령은 재정금융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집착 때문인 듯 했다. 초년병 시절부터 그는 똘똘하고 야무졌다. 남덕우 부총리 시절 외환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였다. 당시 김용환 재무가 긴급자금지원을 받기 위해 워싱턴으로 들고 뛴 「가방속의 꾀」를 밤새워 만들어 낸 것도 그였다. IMF 이후 금감위 위원장이 되어 구조조정의 선봉장이 된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이름이 운명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헌법의 헌(憲)자와 재상 재(宰)자가 들어 있는대로 그는 재상(宰相)급이 될 재상(財相)이 되었다. 어쩌면 매스컴의 평판대로 「준비된 장관」인지 모르겠다. 장관의 틀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 그가 풍기는 이미지는 지략가요 비평가 쪽에 가깝다. KS마크에 정보의 인풋이 보통이 아니다. 재(才)가 승(昇)하니 덕(德)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재상이 될 기국(器局)이 길러졌다면 아마 낭인생활 18년일 듯 싶다. 「세상읽기」를 통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인격에 많은 변화를 주었을 터이다. 한 때 사상계의 복간에 관심을 가졌던 것에서 생각의 변화를 엿보이게도 한다. 금감위 시대를 그래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고 본다면 재무관료로서의 프로 기질과 시류에 대한 비판적 판독력 덕이 아닐까 한다. 이제까지 성공했다고 보는 관료의 행적이 포지티브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가 맡았던 일은 네거티브형(型)이었다. 자르고 문닫고 퇴출시키는 게 업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경제총수로 해야할 일은 포지티브 쪽이다. 생산을 유인하고 기업을 활성화시키고 돈 풀어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 내가 알기로 그는 통화론에 반감은 아니더라도 의문을 갖고 있는 입장이다. 통화증가는 항시 실물경제를 자극한다고 보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이 돈 많이 쓰게될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낙점을 유도하게 한 것인지 혹은 「준비된 정책」의 하나 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바둑과 장기에 능한 그는 낭인시절 『맨날 졸(卒)장기나 두고 궁(宮)은 제 마음대로 장기판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고 곧잘 시국을 비판하곤 했다. 제대로 된 장기는 어떻게 두는 건지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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