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취미 삼아 즐기는 것과 그것을 업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을 게다. 나도 20여년 전부터 골프용품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면서 골프와의 순수했던 관계에 다소의 변화가 생겼다.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그냥 넘겨 보지 못하고 그의 스윙과 골프채를 자세히 눈 여겨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80년대에는 숫제 국내 자체 기술로 골프클럽을 제작하는 일에 심취하게 됐다. 현재 몸 담고 있는 회사는 수입업체지만 본래 클럽 제조를 위해 설립된 것이었다.
그 당시 지금은 골프 교습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임진한 프로와 함께 우리 기술로 제대로 된 클럽을 탄생시켜보자고 의기투합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때는 감나무로 드라이버 헤드를 만들던 시절이었고, 국내에서 감나무로 유명한 곳은 강원도 홍천이었다. 일본의 장비 관련 과학과 기술이 앞서 있었으므로 던롭사로 홍천의 감나무를 보내 헤드 소재로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부적합. 우리나라는 평균기온이 낮아 목질이 너무 치밀해서 헤드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진흙으로 모형을 만들어 헤드를 디자인하겠다고 덤벼들었던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그때 노력과 공부를 통해 클럽 보는 안목을 키우게 됐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동안 골프를 하면서 특별한 진기록은 그다지 많이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 해 전 오랜 친구들과 아시아나CC 서코스에서 함께 한 라운드는 잊을 수가 없다. 300야드가 조금 넘는 파4의 3번홀. 장난기 많은 한 친구가 “골프채 장사하는 사람이 100번 설명하면 뭘 하나. 직접 보여줘야지”라며 심기를 건드렸다. 마음 먹고 티샷을 날렸는데 놀랍게도 볼이 그대로 그린에 올라갔다. 비록 이글 퍼팅이 조금 짧아 버디에 그쳤지만 내게는 홀인원 만큼이나 놀랍고도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그 순간 직업 때문에 조금은 순수하지 못했던 골프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골프는 내게 언제나 소중한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이상훈기자 fla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