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격변기 은행산업] 3. 선진 금융시스템 정착 서둘러야

불행히 국내은행들은 지금까지도 살얼음판을 미처 다 건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영업환경은 올 초반보다 악조건에 휩싸여 있다. 사방이 온통 먹구름에 드리워진 채 또한번 정부의 손을 빌려야 할 판이다.여기에 지리하게 끌어온 제일은행 매각이 완료됨에 따라 외국계 거대자본과의 격돌이 초읽기로 다가왔다.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머릿속에 그려왔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본격적으로 현실에 접목시켜야 할 때가 왔다. ◇은행, 무엇을 준비했나=올 상반기 은행은 「많이 변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비상임이사 중심의 의사결정 신용평가시스템에 의한 과학적 대출체계 구축 노력 영역확대를 위한 여타 금융권과의 제한적 업무제휴 등. 그러나 실질적 변화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외국 금융기관들의 관습을 눈대중으로 베끼기는 했지만 실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 것이다. 비상임이사가 은행경영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흐릿하고 선진 대출시스템은 금융시장의 불안과 2차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일선 지점의 구성원들에게 투영되지 못하고 있다. 업무제휴에 있어서는 감독당국이 핵심업무 외에는 제휴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상태. 핵심부분에 대한 물꼬트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효력은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다. 또 지휘봉을 쥔 임원들은 기껏 도입한 선진 시스템보다는 정부의 한마디에 무게를 두는 기존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상품개발도 마찬가지다. 나날이 현란한 금융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결국은 다른 은행상품 베끼기나 기존 상품의 틀을 유지한 「변형상품」에 그치고 있어 고객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최근 직접금융시장이 활성화하면서부터는 은행 돈의 부동화(浮動化)가 심해져 본래의 위치마저 흔들리고 있다. ◇제한된 변화, 아직까지는 서막에 불과=그렇다고 은행이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을 순 없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대한의 변신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게 국내 은행들이 처한 현실이다. 외국은행의 본격적인 입성이 이루어질 경우 정부도 더이상 「관용」을 베풀 수 없다. 은행들은 우선 은행창구부터 바꾸겠다는 심산이다. 각 은행들은 전화대출을 늘리거나 ATM기 사용고객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창구손님을 줄이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주택은행은 오는 11월부터 「후선업무 집중화」라는 제도를 도입, 은행창구를 완전히 뜯어고칠 요량이다. 콜센터를 최대한 키우고 과학적 대출시스템을 통해 창구 잡무를 없애겠다는 것. 전자금융이 서서히 움을 트고 있는 셈이다. 전문인력 키우기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은행들은 증권사 등 여러 금융기관들로부터 우수 인력을 스카웃, 자산운용과 대출심사 등에 활용하는 한편 연수프로그램을 강화해 자체 인력양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은행권의 노력은 여전히 소극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의 틀을 완전히 바꾸고 진정한 「선진은행」으로 탈바꿈하기엔 역부족이다. 아직까지는 외국은행들 「흉내내기」에 불과하다.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은행들도 이제는 강요된 변화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외국은행들이 입성해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섰을 때 준비해봐야 때늦은 일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시스템의 정착이다. 은행들이 웬만한 선진금융기법은 죄다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은행의 축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기법을 도입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외국은행은 모든 의사결정이 매뉴얼에 따라 이뤄지는 반면 국내은행은 여전히 「사람」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체제』라고 지적했다. 사람이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현 체제에서 시스템이 사람을 움직이는 체제로의 변환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신경립기자KLSIN@SED.CO.KR 김영기기자YGKIM@ 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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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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