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누구를 위한 노조법 재개정인가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개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선진화 법제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노사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법제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노동계 움직임에 노동계의 표를 의식한 야4당이 합세함으로써 힘겹게 이룬 개혁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된다. 노조전임자 급여 문제와 복수노조 문제를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계속 미루기만 하다 이명박 정부의 손에서 해결을 본 것은 필자로서는 아쉬운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해묵은 과제가 꽤 합리적으로 마무리된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전자는 이미 타임오프제와 더불어 산업현장에서 시행 중이고 후자는 오는 7월부터 시행 예고돼 있는 시점에서 이를 뒤엎으려는 시도는 기본적으로 반개혁적임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그것은 일반 근로자는 물론 조합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노조간부 위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노동계가 노조에 의해 주도되고 노조는 내부 민주주의보다는 과두적 지배구조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야4당이 이에 동조하는 것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워낙 정당 정체성이 불분명해 목전의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노조간부들에 휘둘리기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무슨 심오한 정치철학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노동계의 표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에 근거한 현실적 내지 전략적 선택이 아닌가 한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면서 야권연대를 유일한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듯한 현 상황에 비춰 일단 이렇게 이해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해가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치문외한의 '특권'에 기대어 얘기해 보자면 그래서는 별로 표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감표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선 노동계의 투표는 추상적인 계급이론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노조간부 위주의 정치행위에 일반근로자는 물론 조합원마저도 쉽사리 동원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피부로 느끼기에 국민들이 현정권에 호의적이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기회주의적 정치행위까지 용납하는 것은 아님은 이미 지난 몇 차례의 선거과정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야4당도 이를 의식했는지 양 노총이 요구한 8개 사항 가운데 위 두 사안에는 동조하지만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 이견을 보이고 것으로 알려진다. 교섭체제, 노조설립 절차, 단체협약 해지, 사용자 개념,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필수유지업무 등 이미 국민적 공감대에 근거해 있는 사안들까지 뒤엎기에 동조한다면 이는 감표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정치적 위상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보다 못한 정치적 위상을 자초하고자 하는 정당에 국민들이 표를 줄리 만무하다. 비록 정치에 문외한이기는 하지만 필자도 정치적 연대의 힘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근대 동서의 역사에서 연대는 분열에 대해 항상 승리를 거둬 왔다. 그러나 연대는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임기방편의 무원칙한 연대는 필히 분열을 낳고 그러한 분열은 국민들을 더욱 갈등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렇지 않아도 '엄지 무덤'을 쌓아온 우리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손가락 무덤'을 원치 않을 것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일수록 표 계산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현행 노조 및 노사관련 법제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의 틈새를 노려 새로이 도입된 개혁법제를 시행도 하기 전에 뒤엎으려 하거나 상당히 정착된 제도를 조직이기주의나 노조간부 편의 위주로 변조시키려는 시도가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노동운동은 사회적 공동선(共同善)을 지향해야 하며 공동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정치권은 기회주의적 노동운동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을 긋는 용기를 발휘해야 제 이름값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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