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우 팬택 대표와 직원들에게 '팬택'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다. 이 대표는 "팬택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벤처 신화를 써온 기업"이라고 말했다. 창업 이후 수많은 위기를 이겨내며 성장한 팬택은 어느새 한국 휴대폰 산업에 작지만 큰 역사를 만들었다. 그런 팬택이 곧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팬택이 쓰러지면 고급 인력이동과 그에 따른 해외 기술유출은 물론 1·2차 협력업체 피해 등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다"며 "채권단과 이통사, 그리고 정부가 지혜를 모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팬택은 무선호출기 사업을 시작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휴대폰 제조라는 한 우물을 파온 회사다. 지난 1991년 박병엽 전 부회장이 직원 6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일명 '삐삐(무선호출기)' 개발로 통신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1년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현대큐리텔을, 2005년 SK텔레콤의 자회사 SK텔레텍을 인수하며 벤처기업의 상징으로 성장했다. 일반폰은 '스카이', 스마트폰은 '베가'가 대표 브랜드다.
팬택의 한 관계자는 "규모는 작지만 연구개발 등에서 대기업 못지않은 자금과 인력을 확보했다"며 "이를 통해 대기업도 시도하지 못한 최초 기술들을 여럿 선보이며 휴대폰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장세를 달리던 팬택은 2007년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한다. 워크아웃을 계기로 창업주 박 전 부회장은 4,000억원 규모의 지분 전체를 내놓고 백의종군했다. 워크아웃 기간 팬택은 18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LG전자를 제치고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다른 팬택의 한 관계자는 "1차 워크아웃 때 삼성전자와 비슷한 시기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도 했다"며 "이 기간에 연속 영업흑자를 달성해 워크아웃을 종료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워크아웃 졸업과 함께 제2의 도약을 준비했던 팬택이 발목을 잡힌 것은 2013년 1·4분기 이동통신사 순차 영업정지였다. 통신사 영업정지는 국내시장 축소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지난해 10월에는 임직원 30% 6개월 무급휴직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창업주 박 전 부회장은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사업구조 역시 국내 위주로 재편할 수밖에 없었다.
2차 워크아웃 중인 팬택은 현재 운영자금도 거의 바닥을 드러난 상태다. 한마디로 채권단 등 외부의 도움 없이는 하루살이 생존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대표가 채권단과 이통사에 팬택을 도와 달라고 호소한 것이 이 때문이다.
만약 팬택이 워크아웃을 중단하게 되면 법정관리 수순에 들어간다. 팬택의 채권은 산업은행 등 금융권 차입금이 5,236억원, 이동통신 3사의 매출채권 등 상거래채권이 5,481억원 수준이다. 특히 출자전환 거부시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팬택의 협력업체 550여곳 7만~8만명가량의 직원들이 직장을 잃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동통신사가 출자전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대답을 회피하며 거부 입장을 언론에 흘리는 것도 향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회사를 살려달라는 '눈물의 호소'를 쏟아내면서도 이번 위기만 넘기면 충분히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대표는 "실사를 거쳐서 5개년계획 등 경영정상화 방안이 나와 있다"며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유치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매출을 확대하는 것으로 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이행하면 독자생존이 가능하고 외부 투자유치가 성사되면 더 빠른 정상화도 가능하다"고 힘줘 말했다.
팬택의 기술력은 독자생존의 최대 무기다. 후면 터치 기술 등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팬택은 자체 특허 건수만도 4,800여건에 이르고 세계 최초 기록도 12건에 달한다. 팬택의 기술력을 책임지고 있는 팬택 중앙연구소장의 문지욱 부사장은 "우리는 스마트폰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최적화해 이른 시간에 출시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며 "기술혁신과 도전정신에 있어서는 탁월한 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