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시인은 그의 시에서 ‘밥을 먹다가도, 테레빌 보다가도 그저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밥 먹는 날의 무슨 일이 슬프거나, 텔레비전의 화면에 비치는 사연이 슬퍼서가 아닐 것이다. 노시인이 살아온 세월 속에서 생각나는 옛일들 때문일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번의 재를 올려 벌써 49재가 지났는데도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난다.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없어서 혹은 더 오래 모시지 못해서가 아니다. 불효하지만 아흔 셋의 수를 하셨으니 그런 일로 눈물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 아들이 내게 물었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자꾸 우세요?”
나는 대답했다. “할머니가 살아오신 세월의 사연들 때문에 눈물이 나는구나. 무엇보다 가난하던 시절, 우리 7남매를 먹이시느라 당신의 배를 줄이셨고, 돈을 너무나 못 쓰고 사셨고, 가고 싶은 학교도 못 다니셨고, 가고 싶은 데도 맘대로 못 다니시고 사신 그 세월이 너무나 슬프구나….”
우리의 어머니들이 살아오신 세월이 그러했지 않은가.
나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빈소를 찾아주신 조문객들에게 그러한 우리 어머니에 대한 글을 한 편 써서 일일이 나눠 드렸다. 우리 어머니가 어떠한 분이며 어떻게 사셨는지를 쓰고는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면 여러 손님들께 꼭 밥 먹고 가시라고 하셨을 것이니, 바쁘시더라도 꼭 술 한 잔에 밥 한 술 잡숫고 가시라’는 안내의 말을 남겼다.
그 앞에는 ‘배고픔의 슬픔을 아는 어머니에게 밥은 신앙과도 같았다’고 썼다.
친구 박건삼 시인은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상제인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에게 밥은 신앙과도 같았다는 말에 목이 캑캑 막힌다’고.
지금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고픈 사람들의 슬픔을 알며 또 스스로 배고픔의 슬픔을 알고 있을까. 이 ‘다이어트 열풍’의 세상에.
어머니 생각에 그저 눈물이 나는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내년 겨울 첫 제사 때 어머니의 손자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정말로 목이 콱 막히는 옛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밥을 소중히 여기라는 하찮은 이야기를 강하게 할 것이다.
나는 요즘도 밥을 마구 남기지 않는다. 앞으로는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그저 눈물이’ 나고 혼자 목이 캑캑 막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