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G7


엔저 정책이 견제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또 무산되고 말았다. 지난 11일 영국에서 폐막된 주요7개국(G7) 재무장관ㆍ중앙은행장 회의에서도 엔화 약세에 대한 합의안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국제적 용인 아래 엔저 현상이 더 이어지고 수출 타격 역시 심화할까 걱정이다.


△엔저를 사실상 눈감은 G7이 탄생한 계기는 1973년 석유 위기. 마침 미국의 달러 불태환 선포 이후여서 국제 거래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하자 미국과 영국ㆍ프랑스ㆍ독일(당시는 서독) 등 4개국 재무장관이 머리를 맞댄 게 시초다. 이후 일본과 이탈리아가 추가되고 유럽 국가 일색인 모임에 불만을 품은 미국의 강력한 추천으로 캐나다가 참여해 G7으로 굳어졌다. G7의 공식 출발점인 1975년 6월 말 산 후안 성명은 실업 감소와 인플레이션 회피, 지속적인 성장을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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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G7은 과연 목표를 이뤘을까. 부정적 평가가 많다. 오히려 슈퍼 파워인 미국을 위해 주요 국가들이 협력하는 창구로 전락했다. G7 출범 10년 후 미국은 뉴욕 플라자 호텔에 이탈리아와 캐나다를 제외한 G7 재무장관들을 불러놓고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냈다. 서독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골자로 하는 플라자합의 이후 엔ㆍ달러 환율은 260엔대에서 1987년 말 120엔대로 떨어졌다. 1995년에는 엔화가치가 달러당 79엔대로 주저앉자 G7은 엔저를 유도하자는 역플라자합의에 이르렀다.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고는 1980년 중후반 이후 한국에 3저호황이라는 반사이익을 안겼다. 반대로 역플라자합의는 1997년 외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G7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G2로 꼽히고 G7에 러시아가 낀 G8의 힘이 더 센 것 같다. 38년 전 출범할 때 G7은 세계 인구의 14%, 전 세계 총생산(WGDP)의 56%를 차지했으나 요즘 이 비중은 각각 10.5%, 47.3%로 떨어졌다. G7을 대체할 G8이나 G10에 들지 못하고 G7으로부터는 도움도 못 받는 우리의 처지가 처량하다. G20 정상회의 개최로 국격이 높아졌다고 우쭐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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