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개인파산 부추기는 사회] <중> 면책만 있고, 갱생은 없다

빚 탕감 받았지만 '갱생 프로그램' 있으나 마나…실업자 신세 못 벗어난다<br>연령도 낮아져 새 사회 문제로 비화 조짐<br>작년말까지 12%만 취업…"일자리 찾아줘야"<br>파산자 급증으로 은행권은 채권회수 '비상'



카드로 병원비를 내다가 빚더미에 앉게 된 29세의 최씨는 지난 2004년 4월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고 오랜 기다린 끝에 일자리도 소개받았다. 한달에 97만원의 봉급으로 빚도 갚고 생활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더니 직장은 2005년 3월 문을 닫았다. 최씨는 지난해 3월 파산ㆍ면책을 통해 카드 빚에서 해방됐지만 여전히 실업자 신세는 면하지 못하고 있다. 최씨처럼 파산ㆍ면책 후에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는 한둘이 아니다. 개인파산이 양산된 것은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2004년 말 현재 파산자 수가 인구 1만명당 2.6명으로 미국 37.8명, 일본 16.5명, 독일 5.9명 등에 비해 너무 적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통합도산법을 개정해 개인파산 신청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이에 호응해 법원이 ▦면책 허가율 99% ▦서류ㆍ심문 간소화 ▦카드깡ㆍ돌려막기 등 면책불허 대상도 재량면책 허용 등 신청자의 부담을 덜어줬다. 변호사ㆍ법무사와 브로커 등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치열한 광고전과 파산자 유치경쟁에 나섰다. 정부와 법원이 앞장서 개인파산의 문턱을 크게 낮추고 법무사ㆍ브로커 등은 뒤에서 밀면서 한달에 1만명 이상의 개인파산을 신청하도록 부추긴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파산자 수는 인구 1만명당 25명을 넘어서 영국ㆍ독일 등에 비해 4배 이상 많아졌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개인파산의 목적은 면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갱생에 있다”며 “정부가 파산에만 집착하고 갱생에는 소홀해 개인파산제도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못 받는다”고 잘라 말했다. 채형석 법무법인 대종 변호사도 “파산이 인생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려면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일거리를 찾아줘야 한다”며 “파산ㆍ면책은 (신용불량자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지 결론이 아닌 만큼 이제 나머지 절반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취업알선 프로그램과 서울보증보험을 통한 신원보증서 발급 등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까지 총 7만4,125명이 일자리를 신청했지만 그 중 12%인 8,906명만이 취업에 성공했다. 그나마 중간에 회사가 월급을 못 주거나 문을 닫는 경우가 적지않다. 매년 10만명 이상의 파산ㆍ면책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갱생을 위한 대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파산자의 평균 연령이 40~50대에서 20~30대로 낮아지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 임종석 솔로몬신용평가 부사장은 “파산이 경제적 사망선고와 같은데 브로커들이 젊은 사람에게도 파산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은 20~30대가 신용불량자ㆍ파산자가 되지 않도록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파산을 부추기면서 금융기관들의 채권회수에도 비상이 걸렸다. 개인워크아웃(신용회복지원) 신청자 숫자보다 파산 신청자가 더 많아졌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2003년 2만2,557명에서 04년 23만9,813명으로 10배 이상 급증했지만 지난해는 9만942명으로 줄었다. 파산 신청자 12만명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빚을 한푼도 안 갚아도 되는 파산 면책률이 99%를 넘는데 굳이 힘들여서 빚을 갚겠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며 “워크아웃 채권은 일부라도 회수가 가능하지만 파산은 한푼도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워크아웃이 줄고 파산이 늘어나는 만큼 손실률도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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