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보다 문화 쉼터를 짓자거리를 방황하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반항의 세대 10대도 아닌데 웬 방황. 모르는 말이다. 노인들의 방황은 이미 사회에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얼마 전 발생했던 70대노인의 치정살인사건은 노인사회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노인들의 방황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발생한다. 젊은이들과는 정반대로 시간은 많은 데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속에 단절된 낯선 세계로 차츰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 (서글픈) 이야기 하나
재수생들로 붐비는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로터리. 이 근처 유명 학원 지하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찾는 불법 무도 교습소(카바레)가 있다. 입장료는 여성이 1,000원. 남성은 2,000원이다. 웬지 어두침침한 분위기. 강남의 휘황찬란한 카바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곳은 노인들에게 서울의 명소가 된지 꽤 오래다. 6시면 문을 닫는데도 이 곳을 찾는 노인들은 하루에 줄잡아 2,000명이 넘는다.
김문철 할아버지 (71세ㆍ서울 중랑구 면목동)도 이 카바레를 자주 찾는 단골이다. 할아버지는 이 곳에서 한 병에 3,000원 하는 맥주를 몇 명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춤도 배우고 할머니들을 만나 얘기도 나눈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좀 높을 뿐 일반 카바레와 거의 똑같다. 부킹(남자와 여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도 있고 뜻이 맞을 경우 남녀가 짝을 맞춰 애프터를 신청한다. 맘이 맞으면 커피를 마시러 나가기도 하고, 둘 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김 할아버지는 “이 곳처럼 노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노인카바레가 서울에만 40군데는 족히 된다”고 귀띔했다.
▶ (충격적인) 이야기 둘
서종인 할아버지(가명ㆍ75세)는 이런 곳을 드나들다 쓰려고 평생 모았던 5억원을 몽땅 날렸다. 할머니 ‘꽃뱀’을 만난 게 화근이었다. 차분한 인상의 할머니는 혼자 사는 할아버지 아파트에 자주 들러 빨래도 해주고 음식도 챙겨줬다.
할머니를 일찍 보내 적막함을 달랠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따뜻한 애정에 쉽게 빨려 들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할머니 꽃뱀은 할아버지가 평생 모은 통장을 들고 종적을 감추었다.
할아버지는 이후 백방으로 꽃뱀을 찾아나섰으나 허사였다. 할아버지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얘기도 못하고 끙끙 앓아야만 했다. 그대로 파탄이었다. 자식들은 할머니 꽃뱀에 물린 할아버지를 창피하다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 노인사회문제 급증 우려
풍부한 경험과 삶의 지혜로 상징되는 한국의 노인들이 거리로, 컴컴한 어둠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 할아버지가 당한 일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드러나지 않을 뿐 노인들이 당하는 말 못할 서러움과 억울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노인의 전화’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노인들의 성(性)문제를 쳐다보지도 않는 사이 에이즈(AIDSㆍ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걸려 고생하는 노인들도 날로 늘고 있다.
임춘식 한국노인복지학회장(한남대 교수)는 “정부의 노인정책은 전시효과만을 노린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노인들의 방황을 방치할 경우 머지않아 청소년문제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문제가 될 것이다”고 경고한다.
▶ 양지의 쉼터를 늘려라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된 ‘또 다른 세계’를 저술한 메리 파이퍼는 “노인들은 젊은 노인들과 늙은 노인들로 나뉜다. 젊은 노인들은 나이가 들었어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노인들이며, 늙은 노인들은 치매나 중풍,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노인들이다.
노인들의 사회문제는 대부분 ‘몸은 김정구’이지만 ‘마음만은 박남정’인 젊은 노인들 사이에 일어난다.
박재간 노인문제연구소장은 “한달 운영비로 겨우 3만원정도를 지원하는 경로당을 지어놓는게 우리나라 노인복지정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라며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설과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노인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문화공간이나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 다양한 스포츠와 오락을 즐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센터 등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인들에겐 양지의 쉼터가 더 필요하다.
●특별취재팀●
권홍우차장(팀장)ㆍ박연우차장ㆍ박동석ㆍ최석영ㆍ송영규ㆍ장선화ㆍ신경립ㆍ최원정ㆍ이철균ㆍ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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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