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BRICS)의 강력한 차세대 후보군으로 꼽히던 터키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라는 복병을 만나 '제2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반정부시위가 또 다른 '아랍의 봄'을 촉발할 경우 지난해 백금광산 파업으로 발목이 잡힌 남아공과 유사한 경기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3일 외신에 따르면 터키 이스탄불 도심공원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위가 수만명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확산됐다. 일주일째 계속된 시위에서 터키 국민들은 권위적 이슬람 정치를 강화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를 '숱탄(sultanㆍ전제군주)'이라고 부르며 퇴진을 요구했다. 미국의 외교 싱크탱크 워싱턴인스티튜트의 소너 차가프타이 터키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는 "터키 중산층이 인권을 중시하는 새로운 터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반정부시위 도시도 48개에서 67개로 확산됐으며 독일ㆍ그리스의 터키 대사관ㆍ영사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지는 등 독재정권 붕괴로 이어졌던 '제2의 아랍의 봄' 가능성도 점쳐진다. 에르도안 총리는 "독재는 내 성정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시위의 배후로 세속정당이자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을 지목하며 "내년 선거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표를 빼앗으려고 시위를 선동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시위대의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터키는 지난 2003년 에르도안 총리 집권 이후 1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대에서 1만달러대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 또한 각각 4%로 글로벌 경기둔화에도 안정적인 성장세가 예상되고 재정적자와 공공부채도 국내총생산(GDP)의 각각 6%, 36%로 다른 신흥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하지만 반정부시위 확대로 에르도안 총리의 장기집권에 빨간불이 켜졌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반정부시위가 장기화할 경우 '제2의 남아공'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아프리카 최대 경제국가인 남아공은 지난해 8월 세계 최대의 백금 생산업체 앵글로아메리칸플래티넘 광산 노조원들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무장파업을 벌이고 경찰이 폭력진압에 나서면서 전국적 파업으로 번져 국가신용등급이 한단계 강등되는 등 경기가 침체됐다. 남아공 랜드화는 지난주 말 달러당 10.19랜드까지 치솟으며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으며 성장률도 올 1ㆍ4분기 0.9%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실제 반정부시위에 대한 우려로 터키 금융시장은 극심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정부시위가 벌어진 지 일주일 만에 터키 리라화는 달러 대비 1.89리라로 1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10년물 채권금리도 0.4%포인트 상승했다. 가란티증권의 투판 코메르트 분석가는 "주가하락 등 터키 금융자산 폭락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이슬람에 기반을 둔 에르도안 정부는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의 지지를 얻고 있다"면서 "이집트 혁명처럼 아랍의 봄을 결집해낼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이 없다"고 터키 반정부시위의 한계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