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판된 스타벅스의 여름 시즌 ''워터 보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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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벅스 소공동점에 진열된 다양한 MD 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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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제리너스커피의 ''행운텀블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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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썸플레이스의 여름 시즌 한정 컵과 보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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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앤탐스의 MD 상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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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스타벅스 매장 앞은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여름 시즌 워터보틀을 사기 위해서였다. 사재기를 우려해 1인당 2개까지 구매를 제한했다. 24개의 머그와 텀블러 중 '서니 워터보틀 2종' '빅터빌 워터보틀' 'SS 더블월 사이렌 워터보틀' 등 4개 아이템은 출시 당일 오전 모두 팔려 나갔다. 반포에 사는 주부 송모(40)씨는 "남편에게 아이들 학교 준비까지 부탁하고 나와 줄을 섰는데 결국 구하지 못했다"면서 "인터넷에 알아보니 2배가 넘는 가격에 되팔리고 있다"고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서니 워터보틀'은 앞서 지난 4월 노란색과 핑크색으로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 출시된 것은 하얀색과 파란색, 실버에 초록컬러를 배합한 제품으로 당시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 들면서 전국적으로 매진됐다. '커피 보다 컵'을 사랑하는 커피 마니아들이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것에서 나아가 커피가 주는 이미지와 문화까지도 즐기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카페에서 즐기는 여유를 일상에 옮겨와 향긋한 커피 향을 만들어 내는 이들은 커피 전문점 관련 상품(MD)을 급기야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커피전문점의 MD란 Merchandise의 준말로 머그, 텀블러, 다이어리, 컵홀더, 보온병, 유리보틀 등 각종 커피 관련 액세서리를 총칭한다. 처음에는 MD 제품들은 일회용 컵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사용이 권고됐다. 하지만 '커피 문화=MD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브랜드들은 다채로운 아이템을 쏟아내고, 갈수록 패셔너블한 아이템이 나오자 소비자들은 시즌마다 재구매를 하며 일명 시즌 콜렉터들까지 생겨났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로고가 새겨진 제품들이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충성고객까지 양산하게 되고 수익도 올려 1석 2조다. 즉 MD 상품을 통해 브랜드 경쟁력을 입증하고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셈이다. 커피전문점 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머그나 텀블러를 사게 되면 객단가도 자연스럽게 올라 가고 브랜드 충성심도 높여주기 때문에 최근에는 MD 제품 비중을 늘리고 개발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커피전문점의 MD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데는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든 커피 문화가 크게 일조한다. 무색무취의 보온병 전문 브랜드의 제품을 쓰는 것 보다 커피전문점의 제품을 사용하면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를 일상에서도 즐기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향긋한 커피 향을 지니고 있는 듯 뭔가 트렌디한 모습도 연출할 수 있다는 게 커피 마니아들의 귀띔이다. 직장 여성 장모(36)씨는 "스타벅스의 서니 워터보틀처럼 쉽게 구하지 못하는 MD 제품을 갖고 다니며 커피와 차를 마시면 남들과 좀 차별화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핸드백 속 작은 텀블러와 사무실 책상 위 예쁜 머그컵이 내가 트렌드에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41)씨는 "평소 물을 잘 마시지 않았는데 맘에 쏙 드는 커피전문점의 보틀을 산 이후 여기에다 계속 차와 물을 담아 마시는 습관이 들었다"며 "확실히 그냥 컵보다는 기분이 좋아지는 뭔가가 있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인구가 많아진 것도 배경으로 작용한다. 글램핑, 캠핑은 물론 자전거, 러닝 열풍이 불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보틀이 패션 센스의 아이콘으로도 자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커피전문점의 MD 열풍의 시초는 단연 스타벅스다. 한국에 1999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오픈하면서 국내 처음 스타벅스 상징인 로고가 박힌 머그와 텀블러가 판매되면서 스타벅스 마니아들이 사모으기 시작했다. 국내 처음 들어왔을 때는 스타벅스 아시아·태평양을 포함한 글로벌에서 공급받은 디자인으로 MD가 출시됐다. 그러나 MD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스타벅스는 매장 내 설치되는 각종 비주얼, 머그와 텀블러, 패키지를 디자인하는 디자인팀과 전세계 시장 트렌드를 파악해 MD에 관련한 상품 기획부터 새로운 상품 개발 및 판매실적을 담당하는 MD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시즌마다 완판 MD 제품을 양산하고, 매 연말 '다이어리 대란'을 일으킨다.
송혜경 스타벅스 사회공헌팀 과장은 "스타벅스 66개 진출국 중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스타벅스에는 MD 상품을 구하기 위해 고객들이 아침부터 매장 밖에 줄을 서고 하루 만에 완판되는 현상은 없다"며 "본사인 미국을 제외하고 비주얼 및 MD, 카드, 웹&모바일까지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는 디자인팀이 존재하는 스타벅스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귀띔했다. 더욱이 미국 본사 스타벅스 측에서 한국에서 디자인한 MD를 갖고 싶어하고 한국 제품을 사용하는 다른 나라 스타벅스를 부러워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다른 커피 전문점들도 MD 상품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 만들기에 골몰한다. 투썸플레이스는 일반적인 텀블러와 머그 외에 한류 스타 이민호의 사진이 포함된 '이민호 텀블러'로 유커의 주목을 끌고 있으며 배우 하정우의 그림이 포함된 머그, 접시 등을 가로수길점에서만 한정 판매해 투썸 마니아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달 중에는 여름 시즌을 타깃으로 한 보틀, 법랑컵도 내놓을 예정이다.
엔제리너스는 시즌이나 이벤트별 콘셉트를 부여해 인기 아이템으로 띄우기도 한다. 지난해 8월에는 수능 100일을 앞두고 수험생에게 행운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행운 텀블러'를 특별 제작했다. 구매 고객이 직접 작성한 응원 메시지가 담겨 선물용으로 크게 활약했다. 올 초 선보인 청양 머그와 텀블러는 출시 일주일 만에 최초 수량이 모두 동이 났고 설 명절 선물세트로도 불티나게 팔렸다. 지난 16일에는 15주년 기념 보틀, 메모리얼 머그, 에코백 등 한정판 기프트백도 출시했다. 스페인 여류 작가 '에바 알머슨', 스웨덴 패션 일러스트 작가 '스티나 페르손', 프랑스 그래픽 아티스트 '말리카 파브르' 등 세계 유명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컵은 단숨에 갖고 싶은 패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지난달까지 텀블러 판매량은 전년 대비 24% 늘었다.
탐앤탐스는 이 시장이 커지자 2013년 직접 개발한 MD 상품과 가정용 커피 머신 등을 판매하는 '탐스커버리' 매장 브랜드를 론칭했다. 텀블러, 콜드텀블러, 머그 뿐 아니라 더치커피, 티앤커피메이커, 허브티, 요거트파우더 등 커피와 티와 관련한 다양한 제품까지 구비했다. '핸들드링킹자'는 지난해 9월 출시 이후 현재까지 31만개나 팔려 나갔으며 이를 모방한 제품들도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