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변화에 따른 것이냐, 규제와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이냐.’ 기업의 투자부진 원인을 놓고 정부와 재계가 현저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원인이 엇갈리니 정확한 처방이 나오기 힘든 셈이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기업들의 투자부진 원인을 진단했다. 그는 지난 8일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기업들이 자존심도 있고 하니까 규제가 뭐고 그런다”며 투자부진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으로 투자 리스크가 커지면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돌다리도 두들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 이 부총리는 기술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졌다는 점도 투자부진의 요인으로 꼽으며 “지금은 전환기적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11일 재경위 국정감사에서 투자 위험요인을 묻는 질문에 “기업활동 환경(규제 등) 측면도 어느 정도 있다”면서도 이들 두 측면에 무게를 뒀다.
경영권 위협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경제주체들은 기본적으로 속박을 다 싫어한다”며 치부하는 모습이었다. 앞서 정례 브리핑에서는 삼성전자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에 대해 “절대로 M&A에 노출될 가능성도 없고 논의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재계는 부총리의 이 같은 진단에 대해 기업들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공박하고 보다 현실적인 상황에 근거해 처방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부회장은 재경위와의 토론회에서 “경제가 현상태로 지속된다면 3~4년 후에는 국민소득 1만달러선 지속은커녕 4,000~5,000달러선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가진 돈을 경영권 방어에만 쓰고 투자는 안하는 등 의욕이 최악”이라고 말했다.
정책 불안감 해소와 일괄적 규제해소를 통한 기업투자 활성화 등에서 타개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친기업적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부총리가 그 같은 발언을 한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규제와 정책 불확실성이 100%는 아니더라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5조8,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민자 LNG사업 등 대형 사업들이 지지부진한 것은 토지이용과 수도권총량제, 시민단체의 반대 등 각종 규제로부터 파생된 결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