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세대에 걸쳐 문명의 향방을 실질적으로 바꿔 놓기에 족할 정도로 독창적인 사상가는 많지 않다. 그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가 프리드먼이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말이다. '통화주의 대부'로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의 활성화를 주장했던 현대 경제학의 거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를 꼽으라고 할 때 영국 경제학자 존 케인즈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1962년 출간된 '자본주의와 자유'는 프리드먼이 1956년 워바시 대학에서 했던 강연을 엮은 책이다. 지금은 경제학의 고전이 됐지만 당시 이 책이 나올 때만 해도 프리드먼의 이론은 케인즈 학파의 아성에 밀려 좀처럼 주목 받지 못했다. 1982년 개정판 서문에서 프리드먼은 자신의 책이 처음 발간됐던 1962년에는 뉴욕타임스나 타임, 뉴스위크, 헤럴드 트리뷴, 시카고 트리뷴 등 주요 인쇄 매체에서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며 "18년간 40만부 이상 판매된 책이 그런 홀대를 받았다"고 툴툴댔다. 주요 신문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그의 이론은 하지만 초판 발행 이후 얼마 가지 않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적극 개입을 주장한 케인즈의 경제 정책이 결국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불러 올 것이라는 프리드먼의 예측이 적중하면서 그의 이론은 정부 정책으로 채택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정부의 힘을 광범위하게 분산해야 한다.""경쟁적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유의 체제이며 정치적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간단명료한 그의 주장은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의 경제 기조로 자리잡았다. 작은 정부, 연금제도 개혁,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 지적재산권 확립 등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줄기차게 외치는 주장들이 44년 전 출간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국가의 연금정책은 자신의 소득을 강제로 납입해야 하는 시민 입장에서 보면 "개인적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귀절이나 의사 자격증 같은 각종 면허제도가 직업을 선택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독점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는 주장 등은 극단적 자유주의자라고 비난을 받는 대목이다. 하지만 매달 봉급명세서에서 연금이 빠져 나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샐러리맨들이라면 심정적 한표를 던지고 싶은 주장이기도 하다. 국내에 몇차례 번역됐지만 대부분 절판된 상태여서 새로운 번역본을 기다린 이들에게는 반가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