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5월28일 정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루스벨트 대통령이 워싱턴 DC에서 원격조종 단추를 누른 순간 개통된 다리를 차량들이 건넜다.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현수교라는 금문교 건설 구상이 나온 것은 1916년. 지역신문의 제안에 반대가 빗발쳤다. 전문가들은 거센 조류와 깊은 바다, 강풍과 안개라는 입지조건에서는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샌프란시스코만을 오가는 페리선 운항업자들을 주축으로 한 거센 반대를 뚫은 주역은 설계와 감독을 맡은 스트라우스. 대학 졸업논문으로 베링해협을 가로지르는 87㎞짜리 교량 건설계획을 제출했던 토목공학자 겸 시인이었던 그는 시 의회를 설득해 1928년 건설허가를 받아냈다. 문제는 자금. 공사비를 3,500만달러로 책정하고 채권을 발행했지만 대공황이 발생하자 아무도 채권을 인수하지 않았다. 스트라우스가 은행가들을 설득해 간신히 착공한 게 1933년 1월. 강철 와이어만 지구를 다섯 바퀴 돌 수 있는 분량이 투입된 공사는 4년4개월 만에 끝났으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우려는 기우였다. 자살장소로 부각되며 준공 이래 1,300명이 다리 가운데서 바다로 뛰어내렸다는 점이 옥의 티일 뿐 교량 자체는 준공 72주년이 지나도록 끄떡없다. 해마다 통행료 수입(약 3,000만달러)의 절반 이상이 유지보수 관리에 투입된 덕분이다. 정규직인 페인트공만 108명에 이른다. 성수대교로 대표되는 우리네 부실 교량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에도 금문교를 능가하는 거대한 교량들이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공사 중인 인천대교와 이순신대교(광양만) 등의 시공뿐 아니라 유지 관리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교량의 생명은 유지 비용과 정비례한다. 속도를 내려는 삽질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에 대한 충실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