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폭력 영화를 때려잡자고?

서슬 퍼런 5공 시절, 브라운관에서 이주일씨가 사라졌다. 그가 추던 ‘헤이’ 춤을 초등학생들이 따라하자 전국 교장단회의에서 “애들 버린다”고 청와대에 투서했기 때문이다. 훗날 한 인터뷰에서 이주일씨는 말한다. “그때 초등학생들이 지금 30대일 텐데 내 춤 때문에 버린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내가 다 책임져줄 테니.” 14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학교폭력 예방대책이라고 내놓은 방안을 보자. 교육부총리까지 참석한 협의회에서는 “‘친구’ 같은 영화에서 학생들이 조직폭력배 같은 언행을 하고, 학생들이 이를 관람해 범죄로 이어진다”며 법적 규제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류의 정책들이야 대부분 유야무야되기 쉬운 터라 가십거리로 넘어갈 수도 있다. “창작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며 “당장 영화제작을 금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인 말도 대책의 궁색함을 말해준다. 문제는 학교폭력을 해결하려는 의지의 진정성과 문화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한심한 시각이다. 잇따른 학교폭력과 학생들의 자살이 폭력 영화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가. 허약한 공교육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은 정치권이 더 잘 알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절실한 의지 없이 눈에 쉽게 띄는 것만 대충 때려잡자는 발상은 학교폭력을 더 부추길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직까지도 대중문화를 저급한 불온문화의 온상쯤으로만 바라보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식이다. 그저 멋있어 보여 문화를 얘기하지만 그게 뭔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봤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문화산업 강국을 외치던 머리로 영화 모방범죄가 걱정되니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있을 수가 없다. 진정으로 학교 폭력을 근절하고 싶다면 제대로 머리를 맞대고 공교육을 살릴 방안부터 제시하라. 영화 못 보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문화산업 시대, 대중문화 육성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박찬욱 감독에게 ‘올드보이’가 잔혹하니 ‘건전 영화’를 만들라고나 하지 말길.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