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서경포커스] 중동진출 전략 달라졌다

SOC·주택건설서 플랜트·IT로 <br>금융권도 현지 사무소 개설, 적극지원

[서경포커스] 중동진출 전략 달라졌다 SOC·주택건설서 플랜트·IT로 금융권도 현지 사무소 개설, 적극지원 최인철 기자 michel@sed.co.kr 쿠웨이트 시티=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 관련기사 • 중공업·종합상사도 플랜트 특수 '톡톡' • 두바이 '중동의 허브'…산업·관광 거점 쿠웨이트시티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 반을 달려 SK건설의 KOCRP 플랜트 설비 화재복구 공사현장을 찾았다. 차에서 내리자 섭씨 50도에 가까운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근로자들은 혹한기 산행 때 사용하는 두꺼운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공사현장을 누비고 있었다. 이병규 현장소장은 “화재로 소실된 시설을 개보수하는 작업이어서 파이프라인ㆍ케이블 등 지하저장물에 사람이 들어가 직접 확인해가며 작업해야 한다”며 작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쿠웨이트 사막에 펼쳐진 SK건설의 플랜트 건설현장은 우리 업계의 중동진출 양상이 크게 달라졌음을 대변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넘나들며 형성되고 있는 2차 중동붐은 한국업계에 질적으로 변화된 양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첫번째 변화는 노동력 중심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주택건축의 과거 패턴에서 벗어나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플랜트 사업에서 정보기술(IT)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민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장은 “1차 중동붐과 2차 중동붐에서 국내기업들의 진출전략은 완전히 다르다”면서 “최근 플랜트, 석유 생산시설, 고부가 선박 등으로 진출 분야가 늘어나고 대상 국가도 사우디아라비아ㆍ이란에서 중동 전지역 국가 등으로 크게 변했다”고 분석했다. 수출입은행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이달까지 중동 지역 수주실적은 28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7% 증가했는데 이중 플랜트 수주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나 늘어났다. 플랜트는 주요 부품을 국내에서 만들어 가져가기 때문에 토목ㆍ건축 등보다 외화 가득률이 높으므로 이 같은 사실은 우리가 선진국 수준에 올라섰음을 반영한다. 금융권의 지원도 달라졌다. 수출입은행은 이달 초 세계 수출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두바이 사무소를 개설해 국내기업들의 플랜트와 대규모 공사 등에 프로젝트 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외환은행도 두바이와 바레인 지역에 사무소를 냈으며 이라크 아르빌 지점도 열어 전후 복구작업의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 1차 중동붐 때 금융권 지원이 전무한 것이나 다름없던 데 비해 상전벽해와도 같은 변화다. IT제품의 중동 지역 수출도 활기를 띠고 있다. IT제품의 전통적인 수출국은 유럽과 미주 지역이지만 최근 중동 지역에 오일달러가 넘쳐나면서 올 들어 중동 지역 IT 수출액은 6억1,023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증가했다. 남석 정보통신부 사무관은 “시리아ㆍ예멘ㆍ수단ㆍ요르단ㆍ모로코 등을 중심으로 셋톱박스 등의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중동붐은 1차 붐에서 노동집약적 건설 분야에 집중하다가 80년대 태국ㆍ필리핀에 밀려났던 한국업계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게 현지 업계 관계자들의 기대다. ● 고부가사업 공략 오일머니 잡는다 사람 사는 흔적을 구경하지 못한 채 황량한 사막을 한시간 이상 달려 만난 것은 이라크 국경 방향으로 뻗은 국도 오른 편에 검은 연기를 뿜으며 솟구치는 거대한 불기둥이었다. 그것은 처리되지 못한 가스를 태워서 없애는 플레어 스택 시설이었다. 그곳?SK건설이 KOCRP 플랜트설비 화재복구 공사를 처음 수주한 것은 지난 2002년 11월. 당시 백만달러 이상 규모의 공사는 반드시 공공입찰을 실시해야 한다는 쿠웨이트 정부의 입찰 관련법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해 관심을 모았다. SK건설은 이 프로젝트로 플랜트 시공능력을 인정받아 단독 수주규모로는 가장 큰 12억달러 규모의 원유집하시설 턴키공사를 수주했다. 손관호 SK건설 사장은 "2003년부터 중동 지역의 노후화된 정유ㆍ석유화학 시설의 신증설이 시작된데다 원유가까지 폭등하면서 원유ㆍ정제ㆍ석유화학 제품시설에 대한 중동 지역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여기에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을 공기 내에 아무 사고 없이 해낼 수 있는 우리의 실력이 입증되면서 인정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의 중동붐을 맞아 매머드 오일머니(oil money)를 따내기 위한 국내 업계의 각오도 달라졌다. 과거 자사 중심의 이기적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국익을 우선 챙기자는 대승적 자세로 바뀌고 있다. 쿠웨이트는 미국ㆍ유럽ㆍ일본계 건설회사도 울고 나가 '건설업계의 무덤'이라는 평이 났던 국가.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 업체간 출혈경쟁이 심했고 기술적인 면 못지않게 행정적인 면도 까다로운 곳. 하지만 최근 들어 과거의 실패를 경험으로 현지화에 성공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SK건설만 해도 이번 수주 외에 4월에는 이탈리아 테크니몽사와 컨소시엄으로 12억달러 규모의 아로마틱 공장 건설공사에 참여해 최저 낙찰업체로 선정됐고 현대건설은 15일 4억달러 규모의 에탄 회수처리시설 공사에 대한 계약을 마쳤다. 여기에 개발도상국이 1억~2억달러 시장을 잠식해오면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5억달러 이상 시장에 초점을 맞춰 매니지먼트 기술을 다지고 국내업체간 출혈경쟁을 지양해온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의 동반 진출도 새로운 양상이다. 국내 금융권에서는 외환은행이 두바이와 바레인 지역에 사무소를 개설했으며 이라크 아르빌지점도 열어 전후복구작업의 전초기지로 삼을 방침이다. 외환은행은 현지 이슬람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출업무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출입은행도 이달 초에 국내 기업들의 중동 지역 개발 프로젝트 수주를 돕기 위해 두바이에 사무소를 열었으며 우리은행은 바레인을 중동 교두보로 삼아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고유가 추세가 장기화하면서 오일머니의 영향력이 확대일로에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중동의 대형프로젝트 입찰시장은 향후 10년간 1조달러에 이르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하 11개국이 원유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올해 300조원으로 사상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 등 걸프만 6개 산유국은 2,000억~3,000억달러를 인프라 투자에 집중적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건설사와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올해 수주가 10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플랜트는 주요 부품을 국내에서 만들어 가져가기 때문에 토목ㆍ건축 등보다 외화 가득률이 높다. 과거 오일머니 공략이 도로 등 기초 인프라 건설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고부가ㆍ고수익 형태로 변한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주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의 오일머니를 잡기 위한 공세는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업체들 역시 중동국가 선주들로부터 대량 주문을 따내고 있다. 문제는 2차 중동붐을 맞은 지금 미국ㆍ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대통령ㆍ총리 등 최고위층이 몸소 나서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로비는 실무선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민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장은 "선진국에서 정부ㆍ기업ㆍ금융기관들이 입체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도 총력전을 벌여야 오일머니 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덕규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과거 30년 전 오일붐 시기나 지금이나 중동시장에 대해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가능성이 높은 중동시장을 틈새시장으로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5/05/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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