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19일(현지시간) 폐막한 미주기구(OAS) 제5차 정상회의는 미국과 남미 국가들이 부시 행정부 때의 앙금을 털고 화해의 몸짓을 보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50년간 봉쇄가 계속돼온 쿠바는 물론 지난해 9월 이후 외교관계가 중단된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가 관계를 복원할 뜻을 비치면서 일단 화해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참가국들은 회의를 결산하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해 여전히 불신이 남아 있음을 드러냈다. 볼리비아ㆍ베네수엘라ㆍ온두라스ㆍ니카라과 등 중남미 좌파블록 정부 지도자들은 쿠바가 이번 회의에 초청 받지 못한 점을 들어 선언문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으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우선 당장 정치범을 석방하고 언론자유화 등 민주주의를 향한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였다.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미국과 중남미 간 경제협력도 불충분한 상태로 끝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원을 약속했으나 백악관으로부터 흘러나온 내용은 1억9,600만달러의 투자계획이 전부였다. 소액 신용대출 1억달러, 카리브 지역 공공치안 개선 3,000만달러, 멕시코의 마약퇴치 활동을 위한 헬기 구입비 6,600만달러 등이다.
중남미 언론들은 이에 대해 “미국의 은행 구제금융 자금 7,000억달러의 0.028%에 불과하다”면서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50% 이상의 대미수출 의존도를 보이는 중남미 국가들을 위해서는 오히려 미국에 대한 수출 확대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국내경기 부양에 급한 미국으로서는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다음 미주 정상회의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갖자고 제의했으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차기 회의에 쿠바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 해제와 이를 통한 미국ㆍ쿠바 관계 정상화가 미국의 중남미 정책의 전환점이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