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양지로 나온 '전가의 보도'

안의식 기자<경제부>

요즘 국세청 출입기자들이 바빠졌다. 특히 새 청장이 온 후로 바빠졌다. 이주성 국세청장 취임 이후 굵직한 이슈들이 연이어 터졌기 때문이다. 음성 탈루 소득자 종합세무조사, 외국계 펀드 세무조사, 부동산 투기지역, 투기 혐의자 조사…. 국세청은 그동안 세무조사와 관련한 언론보도에 극히 신중했다. 신문에 관련된 기사가 나올 경우에도 일체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세무조사를 한다고도, 안한다고도 밝히지 않았다. 조사에 앞서 탈세 혐의자들이 미리 자료를 폐기한다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무조사 사실 자체가 드러날 경우 거래처가 끊기고 은행에서 돈을 미리 갚으라고 독촉하는 등 해당 기업이나 개인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세청에 있어 보안은 생명이다. 국세청 조사국 직원들의 이름도 공개되지 않고 조사국 사무실도 미리 연락되지 않은 사람은 출입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이용섭 전 국세청장이 지난 3월 퇴임사에서 국세청 조사국에 대해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고독한 조직, ‘전가(傳家)의 보도 (寶刀)’처럼 존재만으로 성실 신고를 유도하는 절제된 조직”이라고 표현했을까.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같이 존재만으로도 무서워야 할 ‘전가의 보도’가 너무 빈번히 ‘양지’에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 공개행정을 한다는 등등의 이유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해 집행돼야 할 국세 행정이 부동산 투기를 잡는 데 동원되다 보니 왜곡되는 것은 차지하고 이처럼 ‘전가의 보도’가 너무 자주 양지에 드러나면 면역력만 높이지 않을까. 특히 이 같은 발표들이 부동산 투기를 잡는 데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까도 의문이다. 부동산 값이 급등한 특정 지역의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세무조사 계획을 발표하면 처음에는 ‘아이고 무서워’라면서 움츠리는 효과가 있겠지만 조사 계획이 빈번히 반복돼 발표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즉 처음에는 투기꾼들에 대해 “저런, 저런 나쁜 놈들….” 하면서 비판하다가도 국세청의 투기조사 기사를 자주 접하다 보면 “그쪽 지역에 부동산 투자를 한 사람들이 재미를 보기는 본 모양이다”며 오히려 투기를 안하던 사람들에게조차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지는 않을까. ‘전가의 보도’는 말 자체에서 풍기듯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을 때 더 빛이 나는 법이지 이미 공개적으로 드러나면 그 가치는 퇴색하는 법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