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브레인웨어를 키우자] 2.쓸만한 기술인력이 없다

“가급적 총무나 영업 파트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아니!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굳이 총무나 영업부서를 고집하는 이유가 뭡니까?” 대기업들이 신입 사원을 채용한 후 부서 배치를 위한 면담을 할 때마다 이런 실랑이가 자주 벌어진다. 여기에는 공장 근무를 기피하는 분위기도 크게 작용한다. 공장이 대부분 지방에 자리잡고 있는 탓에 공장 배치를 피하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전공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 생산라인에 배치된 후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게 작용한다. 대기업 H사의 인사관계자는 “공장에 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끈질기게 묻다 보면 `전공 공부를 게을리 한 탓에 현장 업무에 자신이 없다`는 대답이 나올 때가 많다”고 전했다. 전공 및 기초분야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대학에 대한 기업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람은 넘쳐 나지만 쓸만한 인력은 별로 없다는 게 불만의 요지다. 첨단 기술에 대한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우수한 인재를 애타게 찾고 있지만 대학은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지난 2002년을 기준으로 조사대상 49개국 가운데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27위인데 반해 대학교육은 41위, 교육시스템은 32위, 양질의 기술인력은 33위 등으로 교육 및 기술인력과 관련된 평가항목에서는 모두 하위권에 머물렀다. ◇산업현장 유용성 UCLA는 87%, 서울공대는 60%에 그쳐=한송엽 서울 공대 교수가 지난 2001년 미국의 UCLA와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UCLA 졸업생들의 산업현장 유용성은 87%에 달하는 반면 서울공대 졸업생들의 경우 60%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수학 및 공학이론 응용능력, 시스템 설계능력 등 여러 항목에 걸쳐 서울대 졸업생들은 “대학 재학중 받은 교육이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응답했다. 반면 UCLA 졸업생들은 수학 및 공학이론 응용능력, 실험수행능력 등에서 “대학교육의 수준이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높다”고 답했다. 국내 최고라는 서울공대가 이 정도니 다른 대학은 말할 것도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002년말 기업체 인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입 사원이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 및 기술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26%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기업이 신입사원 재교육에 들이는 비용이 1인당 연평균 505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교육 기업의 요구수준보다 크게 떨어져=글로벌 경쟁시대에서 과거처럼 `선진기술 베끼기`전략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그래서 기업은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건다. 이런 기술을 확보하려면 기본적으로 교육의 질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교육은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 더욱이 현재의 교육수준에 대한 대학 자체의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공계 졸업자의 전공분야 기초 원리 이해 수준(100점 만점)에 대해 기업은 80점을 준 반면 대학은 96점을 매긴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분야 최신지식 습득`에 대해서는 기업이 42점, 대학이 71점을 줬다. 결국 대학은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자부하는 반면 기업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셈이다. 특히 전공분야 최신 지식 습득에 대해 기업은 낙제점을 줬다. 그만큼 기술이 엄청나게 빨리 변화는 반면 대학 교육은 그 변화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다. 손욱 삼성인력개발원장은 “대학이 산업변화에 맞춰 양질의 인력을 제때 공급할 수 있도록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못하면 지속적인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공대교육 질적 하락 교육제도도 한몫" 이공계교수들 "학부제ㆍ최소학점이수제등 개편해야" 이공계 대학교수들은 공대 교육의 질적 하락에 대해 자기 반성과 동시에 정부의 교육정책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수능시험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나 약대로 몰리고 있지만 대학에서 교육을 강화하면 이런 문제는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교육제도다. 정부가 제시한 학부제나 최소전공학점 이수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교육부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고, 지원예산에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공계 교수들의 요구는 커리큘럼에서 수학, 물리 등 기초과학 과목과 함께 전공과목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김창경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이공계와 인문계에서 필요한 창의력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인문계의 경우 감수성만 뛰어나도 얼마든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이공계 분야에서는 수학 등 기초과학 및 전공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야 비로소 창의력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동준 연세대 금속공학과 교수는 “현재의 이공계 교육시스템이나 환경으로는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며 “정부를 중심으로 교육제도를 정비하지 않는 한 교육의 질은 개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요자 눈높이 맞춰라" `기업위한 교육`이 해답 국내 이공계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는데 있다.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체 기술력을 높이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면 대학은 이런 변화의 사각지대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관계자는 “이공계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대학이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한다”면서 “대학이 수요자인 기업의 요구에 부응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요자를 위한 교육을 추구해야=이공계 졸업자의 실업률이 40%에 달하지만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면 취업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산업기술대, 동신대, 대림대 등 산학협력에 치중하는 대학들은 졸업자들의 취업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업의 요구를 반영해 교과과정을 만든 뒤 정기적인 산학교류를 통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대학은 아니지만 무역협회에서 운영하는 무역아카데미도 이론과 실무를 접목한 교육과정을 운영해 기업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기업 뿐 아니라 해외기업도 무역아카데미 졸업자들을 채용하려고 경쟁을 벌인다. ◇산학협력대학에서 배워라=산업기술대학교는 기업을 위한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 대학은 해마다 기업의 수요를 반영해 교과과정을 개편한다. 산업기술대는 이 과정에서 가족회사를 활용한다. 가족회사는 주로 안산 지역에 소재한 업체들로 산업기술대와 계약을 체결하면 ▲학교가 보유한 계측장비 사용권 ▲기술 변화에 대한 특강 등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 대신 이들 기업은 산업기술대가 현장 중심형 교육을 펼치도록 지원한다.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분야 등을 대학에 제시하는 형태다. 오재곤 산업기술대 교무처장은 “대부분의 교수가 기업 관련 연구소에서 5~10년 이상의 재직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요구사항을 즉시 교과과정에 반영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밖에 동신대 등 산학협력 모범 대학들은 대부분 기업체 관계자들을 학과별 교과과정 운영위원으로 위촉, 산업현장의 수요를 교육에 반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대학교육보다 강도 높은 무역아카데미=무역아카데미는 현재 1년 과정으로 ▲무역마스터 ▲정보기술(IT)마스터 등 2개 과정을 운영중이다. 무역마스터과정은 연간 1,800시간의 교육을 통해 외국어 및 컴퓨터, 무역실무 능력을 두루 갖춘 무역전사를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IT 마스터 과정은 연간 2,200시간의 수업을 통해 IT 프로젝트 및 외국어 능력을 키워준다. IT 강의 시간은 4년제 대학 정보통신관련 학과의 전공수업시간보다 무려 400시간이나 많다. 교육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무역아카데미의 강점은 기업이나 서울대 컴퓨터신기술공동연구소 등과 협력해 최신 조류를 즉시 교육과정에 반영한다는데 있다. 이 같은 철저한 교육을 통해 이수자들의 취업률이 보통 96~100%다. 특히 IT 마스터 이수자들의 경우 35%는 외국기업에 취업해 일본 등지에서 근무중이다. 이충기 무역협회 이사는 “현재 국내 대학 교육의 문제점은 기업의 요구수준과 괴리를 보이는 것”이라며 “무역아카데미는 이런 틈을 메울 수 있도록 이론과 실무를 동시에 익힐 수 있는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제신문ㆍ산업기술재단 공동기획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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