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외환위기 그후 10년] (3부-2) 공적자금의 두 얼굴

'외환위기 그후 10년' 한국경제 좌표는 <제3부> 최후의 보루, 재정이 흔들린다<br>환란 극복 공신서 '천덕꾸러기' 전락<br>참여정부서 늘어난 국가재무 150兆중 53兆 차지<br>복지·통일등 현안에 떠밀려 상환계획도 안지켜져

98년 5월 김대중(가운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경제대책 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즈음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64조원의 공적자금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1998년 5월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경제대책조정회의. 외환위기에 따른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64조원의 공적자금이 필요하다는 금융감독위원회의 보고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금융기관 보유 부실채권을 근거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공적자금의 신호탄이었다. 98년 9월 정부는 64조원 규모의 ‘제1차 공적자금’을 조성했지만, 1년도 채 안돼 바닥을 드러냈다. 회수됐던 돈을 다시 집어넣고 2차 자금을 조성하는 등 결국 총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끝에 금융기관의 부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막대한 규모의 국민혈세 덕분에 한국은 국가 부도위기를 넘겼고, IMF를 포함한 국제기구로부터 가장 성공적으로 개혁을 추진한 모범국가라는 칭송까지 받게 됐다. 그러나 참여정부 들어 외환위기 극복의‘일등공신’이었던 공적자금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복지ㆍ통일 등 각종 정책에 떠밀려 DJ정권이 약속한 ‘25년내 상환계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가채무 논란이 일 때 마다 공적자금이 주범(참여정부 4년간 증가한 국가채무 150조원 가운데 공적자금이 53조원)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김대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공적자금 원금상환을 미루다 보면 결국 후세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며 “2008년 예정된 재계산에서라도 공적자금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파탄 막은 공적자금 = 97년말 외환위기가 들이닥치자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재벌 그룹들이 한낮에 눈 녹듯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갑작스레 부실여신이 불어난 국내 금융 기관들의 자금여력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며 실물경제가 파탄지경으로 몰려갔다. 97년9월말 현재 25개 은행의 6개월이상 이자를 한푼도 받지 못하는 무수익 여신 21조5,000억원(전체 여신의 7%)이 모두 날라갈 판이었다. 부실채권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국가부도사태까지 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려면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98년 9월 정부 보증 채권으로 64조원의 제1차 공적자금을 조성,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98년 3월기준 금융기관 부실채권 118조원)을 사들이는 한편 부도가 난 금융회사 예금자들에게 예금을 대신 지급했다. 99년 3월말까지 부실채권 매입에 19조3,000억원, 서울ㆍ제일은행과 한빛은행(현 우리금융) 증자, 5개 인수은행 손실보전에 23조3,000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대우쇼크가 터지면서 계획대로 이뤄지던 공적자금 투입이 차질을 빚게 됐다. 미국계 금융 기관들은 금융부실을 제거하려면 40조원 이상이 더 필요하다는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공적자금을 또 다시 조성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웠다.“추가 조성 없이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해서 쓰겠다”던 정부가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19일 공적자금 추가 조성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2차로 조성된 40조원의 공적자금은 부실종금사와 한투, 대투, 제일은행 풋백 등에 사용하는 한편 보험사, 신용금고, 신협에도 소규모로 투입됐다. ◇1년만에 빛바랜 중장기 상환 계획 = 국민의 정부는 2002년말 외환위기 뒷수습을 마무리 짓기 위해 초장기 재정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다. 회수가 힘들 것으로 전망되는 69조원 가운데 49조원은 2003년부터 25년간 매년 재정(일반회계)에서 갚고 나머지(20조원)는 금융권(특별기여금)이 분담한다는 ‘공적자금 상환대책’이었다. 그러나 매년 2조원씩 갚겠다는 약속은 2003년 이후 차질을 빚었다. 세입사정이 악화 된데다 재해로 인해 적자재정 편성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이 부담한 돈도 제대로 안 걷히기는 마찬가지다. 2003년 목표치만 지켜졌을 뿐 지난해말 현재 특별기여금은 2조6,578억원으로 당초 계획(2조8,916억원)보다 2,338억원이 부족한 상태다. 공적자금 상환 스케줄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공적자금 원금을 갚는 일 보다 임시방편으로 돈을 메우는데 더 골몰해있다.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보유한 대우계열사의‘몸값’이 뛰면서 공적자금 회수규모가 지난 2002년 상환계획 수립 당시 추정치 보다 9조1,000억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늘어나는 회수액 가운데 3조원을 올해 공적자금을 갚는데 우선 사용하고 당초 예산에서 계획됐던 2조6,000억원은 200억원으로 대폭 줄인 상태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한 민간위원은 “공자위 회의에서 공적자금 원금상환에 대한 부문이 잊혀진 지 오래됐다”며“원금을 갚아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일보다 자금회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회의가 겉도는 느낌이다”고 토로했다. ◇경기 나빠 긴축재정 펴는 것도 한계=문제는 이미 국가채무로 잡혀 있는 공적자금 원금을 갚을 재원이 없다는 점이다. 원금을 갚으려면 세출구조조정을 하거나 세금을 올려야 되지만 두가지 모두 여의치 않다. 기획예산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적자재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공적자금 원금을 갚기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빚을 내 빚을 갚는 것밖에 안 된다”며 “세입이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는 정책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답답해 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재정 상환일정은 자꾸 미루고 이익이 나는 금융권에 대한 부담을 늘릴 경우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을 되찾기 위해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제한된 세입상황에서 복지와 교육을 늘릴 지, 공적자금을 먼저 갚을지는 선택의 문제”라며 “다만 경기 정체기에 무조건 빚만 갚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긴축재정을 펼 수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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