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급변하는 인구지도가 국제질서 바꾼다



새로운 인구폭탄에 미국ㆍ일본ㆍ유럽ㆍ한국 침몰 전망 인구변수 국력좌우… 출산감소ㆍ고령화가 국제질서 재편 고령화대국 일본, ‘동양의 아르헨티나’전락 우려도 “일본은 ‘동양의 아르헨티나’가 될 것이다.” 저명한 일본의 정치학자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는 1930년대 세계에서 손꼽히던 부자나라에서 불과 10년 만에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한 아르헨티나의 과거에서 경제강국 일본의 암담한 미래를 예견했다. 몰락의 이유는 다르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정국 혼란과 정부의 포퓰리즘으로 곤두박질쳤다면, 일본 경제의 예고된 추락의 원인은 ‘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고령화ㆍ저출산로 세금을 내고 부를 창출하는 노동인구는 줄고 부양을 받아야 할 고령자가 급증하는 일본은 20년간의 만성 침체와 그로 인한 국력 쇠퇴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의 인구지도가 국제 질서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유럽 등 고령화ㆍ저출산 국가들이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노동인구 감소로 서서히 침몰해가는 반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은 급증하는 인구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동력을 장착하고 있다. 잭 골드스톤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새로운 인구폭탄: 세계를 바꿀 네가지 메가트렌드’라는 보고서에서 “기존의 강대국은 대부분 노동인구의 고령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경제력의 약화가 국력의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인구 문제에서 비롯된 21세기 국제질서 재편을 예고했다.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소외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이다. 현재 일본의 평균 연령은 44세, 평균 수명은 83세에 이르는 반면 출산율은 1.4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15~64세 노동인구는 지난 95년 8,700만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래 꾸준한 줄어들어 올해는 노동인구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60%를 밑돌았다. 정부의 온갖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최장기 침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데는 인구 문제가 큰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1947~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 부머, 이른바 단카이(團塊) 세대의 최연장자가 65세를 맞이하는 2012년부터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면서 일본 경제의 추락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일본이 올해 경제규모 세계 2위의 자리를 중국에게 내주는 데 이어 2050년까지는 인도와 브라질, 인도네시아, 멕시코, 터키에도 뒤처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제시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일본의 노동인구는 현재 6,600만명에서 2050년에는 2차대전 말 수준인 5,200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일본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인구문제가 일본, 미국, 유럽에 이어 중국과 한국에서도 부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960~1980년대의 일본에서처럼 노동 인구가 급증한 반면 출산율은 낮아지면서 경제적 혜택을 누렸던 이들 국가들이 앞으로는 노동력 감소로 인해 경제력 저하와 국력 쇠퇴의 길을 밟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인구변동(Demography)이 ‘부채(debt)’와 ‘적자 (deficits)’, ‘디플레이션 (deflation)’등 ‘D의 악재’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미국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미국 고용시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하는 베이비 부머(1946~1964년생)는 총 7,800만여 명으로 3억명에 달하는 미국 인구의 25%에 달한다. 2050년이 되면 미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현재의 2배로 불어나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지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노동력 감소는 물론이고, 의료비와 연금 등에 막대한 국가재정이 투입되면서 국가 발전이나 군사력 유지 등에 필요한 예산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 의회 예산국은 노인복지 예산이 오는 2030년에 국내총생산(GDP)의 25%, 2050년에는 47%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10개국은 올해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웃돌고 있으며, 2015년이면 인구 자연감소가 유럽 전반에서 본격화할 것으로 인구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국제연합은 2050년까지 유럽의 노동인구가 24%줄어드는 반면 60세 이상 고령자는 47%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는 유럽의 노동인구 100명당 연금을 받는 고령인구가 35명이지만,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75명에 이르게 된다. 이 때문에 유럽 각국 정부는 정년을 올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인구문제를 풀어 나가기엔 역부족이다. 니얼 퍼거슨 미 하버드대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 재정적자가 급증하는 것을 물론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진다”며 기존 강대국들이 그에 따른 쇠락에 시급히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퍼거슨 교수는 “이런 모습은 대영제국의 말로와 비슷하다”며 방대한 식민지 유지에 급급해 독일제국의 팽창과 유럽의 전쟁에 대처하지 못한 전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국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인구와 노동인구 급증은 향후 국제질서 변화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은행은 2050년 아프리카ㆍ남미ㆍ중동ㆍ서남아ㆍ동남아 등의 15세 이하 청소년 인구가 전 세계의 9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2030년에 이들 지역의 중산층은 12억명을 돌파, 2005년보다 200%나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개도국의 중산층 인구가 미국과 유럽, 일본 전체 인구보다도 많아지는 것이다. 최근 6년 동안 평균 6%씩 성장해 온 터키의 경우 현재 34세 미만 인구가 전체의 61%에 이른다. 평균연령은 28.5세에 불과하다. 인구 2억3,000만명인 세계 4위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전체 인구의 50%가 25세 이하 젊은 층이다. 막대한 노동인구를 무기로 경제력을 키우고 있는 이들 개도국이 쇠락하는 선진국들을 대신하며 국제질서 재편을 주도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골드스톤 교수는 “선진국의 인구감소와 노동인구 고령화, 개발도상국의 젊은 층 급증과 경제력 이동이 향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 것”이라며 “21세기 국제질서는 새 인구폭탄에 따라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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