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佛 명품 '에르메스 재단'이 선택한 사진작가 이명호

"8월엔 툰드라 초원서 신작 만들것"<br>고비·아라비아 사막 다니며 작품 활동<br>평범한 소재 이용 비현실적 공간 창조<br>에르메스 '나무 2점' '바다 1점'<br>구입 세계적 기업 컬렉션들도 작품 사들여

'나무'

'나무'

'바다'


명품패션 뿐 아니라 수준 높은 미술품 수집으로 세계 예술계를 주도하는 프랑스 에르메스 재단이 사진작가 이명호(사진ㆍ36)의 작품을 최근 구입했다. 작가의 대표작인 '나무(Tree)' 2점과 '바다(Sea)' 1점이다. 파리에 본사를 둔 에르메스 재단이 한국작가 작품을 소장한 것은 이례적이며, 그의 사진들은 세계 주요 에르메스 매장과 에르메스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새해 벽두에 반가운 소식을 전해온 그를 통의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이명호의 대표작인 '나무'시리즈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림 같다, 사진 아니었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서 있는 나무 뒤에 초대형 흰색 천을 설치한 뒤 촬영한 '사진'이다. 커다란 캔버스는 나무를 감싼 액자가 되어 마치 자연 속에 큰 그림이 세워져 있는 듯 착시를 일으킨다.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탐구한" 결과물이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캔버스 자체를 자연에 대입시켰습니다. 보통은 근사하고 멋진 나무를 눈 여겨 보지만 저는 별스러울 것 없는 평범한 나무를 택합니다. 하지만 대형 크레인까지 동원해 캔버스를 배경으로 세우면 나무는 특별해지죠. 돋보입니다. 본질은 그 이면이지 피사체 자체를 봐달라는 게 아니니까요. 나무 뿐 아니라 못생긴 돌이나 평범한 이웃, 수백 마리 중 하나인 개미여도 괜찮습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는 서울대 수학과를 중퇴하고 사진작가로 전향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수학으로 세상 이치를 모두 터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술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한 그는 끊임없는 철학적 질문을 사진작업을 통해 풀어가는 중이다. '나무'가 현실을 드러내 다시 보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2008년 이후 '바다'시리즈는 반대로 비현실을 보여준다. 또 흰 천이다. 고비사막 한 가운데서 작가는 3㎞짜리 광목을 길게 펼쳐 놓았고 300~600명의 사람들에게 이것을 치켜 들게 했다. 수㎞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이 풍경은 사막 한복판에 펼쳐진 수평선이요, 흰 천은 찰랑이는 물처럼 보인다. 마그리트나 달리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꿈을 그렸듯 이명호는 비현실의 공간을 창조했다. 그의 빛나는 가치는 유럽이 먼저 알아봤다. 2007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사진미술관 계간지인 '폼(Foam)'이 그의 사진을 소개했고, 이를 본 뉴욕의 요시미로 갤러리가 러브콜을 보냈다. 요시미로는 사진작가들에게 꿈의 전시관으로 통하는 곳이다. 다음달 열릴 미국 게티미술관의 소장품전에도 이명호의 작품이 대표작으로 선정됐다. 미국 최대 자동차보험사인 '프로그레시브'와 뉴욕의 투자자문회사 '피델리티'를 비롯해 '도이치뱅크', '에어프랑스' 포르투갈 은행 'BES 컬렉션' 등이 한국작가로는 드물게 이명호의 작품을 소장했다. 이들 기업컬렉션은 작품성과 투자가치를 모두 고려하고 있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자랑하는 곳이다. "고비, 둔황을 비롯해 아라비아 사막과 두바이까지 더운 곳을 다녔는데요, 올해 8월에는 러시아의 툰드라 초원에서 신작을 만들 겁니다. 수 억년의 풍화를 견딘 엄청 큰 바위가 벌판을 지키고 있는 곳이죠. 묵묵히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포착해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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