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문다. 올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느라 부산했다. 하지만 성취감을 느끼기보다는 허전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세모를 맞는다.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 걸핏하면 등장하는 극단적 집단행동, 사안마다 부딪히는 정당간 반목 등으로 또 한 해가 갔다. 그나마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었던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마저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우리는 커다란 허탈감을 맛봐야 했다.
우리가 바쁜 것에 비해 성과가 저조하고 매사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투쟁으로 날을 지새우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조급한 마음에 기본을 무시하고 반칙도 수시로 하며 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남 얘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이제는 풍토병이 돼버린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구태가 계속되는 한 소득수준이 좀 높아진다 해도 자긍심을 가질 수는 없다.
선진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좀더 기본에 충실해야겠다. 최근의 과학논문 파문에서도 매사에 원칙이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보여줬다. 다른 분야도 비슷할 것이다. 1427년 역사의 세계 최고(最古) 기업 일본의 곤고구미(金剛組)를 지탱해온 힘은 ‘기본에 충실하라’ 였다고 한다. 답답하고 뒤처지는 것 같아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그리고 지킬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겠다. 얼마 전 주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은 법이 강력하고 복잡하지만 지켜지는 것은 드물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특히 법과 제도는 무리하면 탈이 난다. 최근에 논의되는 건설 관련 제도만 보더라도 무리한 것이 한둘 아니다.
맹목적인 속도경쟁을 자제해야겠다. ‘빨리빨리’가 우리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과속은 저급ㆍ불량으로 이어지기 쉽다. 외형적인 성과를 좇다 보니 ‘대충대충’을 용인하게 된다. 건설현장도 공사일정을 이유로 밤샘작업을 종종 했다.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늦더라도 철저해야겠다.
‘세월은 본래 길지만 마음 바쁜 자가 짧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새해에는 그동안 익숙했던 구태와 결별을 하고 여유를 가지고 기본에 충실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보이고 외치는 개혁이 아니라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는 혁신의 해가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