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끝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적의 손에서 구하자.’ 사내들이 가족과 포옹한 후 칼을 들었다. 회의장에 다시 모인 전사들은 제비를 뽑았다. 뽑힌 사람 1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 손으로 죽인 처자식 옆에 누웠다. 제비를 뽑은 10명은 성안을 돌며 전우의 목숨을 거뒀다. 남은 10명은 또 제비를 뽑아 똑같은 방식의 죽음을 택했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은 스스로를 찔렀다.
서기 73년 5월2일 밤, 사해 부근 마사다 요새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음날 아침 요새는 로마군에게 떨어졌다. 960구의 시체만 남았을 뿐이다. 마사다 함락으로 66년부터 시작된 1차 유대전쟁도 끝났다. 이 전쟁에 동원된 로마군은 8만여명. 로마가 치렀던 어떤 전쟁보다 많은 병력이 투입됐다. 유대전쟁에서 이긴 로마는 반란의 싹을 잘랐다며 개선문을 세우고 기념주화까지 만들었지만 저항은 113년과 133년의 2차ㆍ3차 유대전쟁으로 이어졌다. 마사다의 항전이 가슴속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와의 세 차례 전쟁 이후 전세계에 강제로 흩어진 유대인이 끝내 민족의 정체성과 언어를 지켜나간 것에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마사다의 전설이 깔려 있다. 마사다는 탈무드ㆍ선민의식과 함께 이스라엘을 이끄는 3대 정신적 동력원으로 작동 중이다.
요즘도 마사다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스라엘 각급 군사학교 졸업생들은 훈련의 마지막 코스인 마사다 요새에서 ‘마사다를 기억하자’고 외친다. 어디 군인뿐이랴.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휩쓸고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황사를 타고 멀리 마사다의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조상의 수모를 잊지 마라.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