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클릭 이 판결] <9> 삼성-애플 특허소송

삼성 상용특허 내세워 반전 기회 잡아

표준특허 '프랜드 원칙'에 막혀 법원서 수용 안돼 전략 수정

디지털 이미지 등 상용기술 "애플이 베꼈다" 판결 이끌어내

2011년 3월 2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르바부에나 아트센터에서 열린 애플 아이패드2의 공개행사. 지금은 세상을 떠난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유려한 프리젠테이션으로 아이패드2의 장점을 뽐냈다. 그런데 연설의 상당 부분은 경쟁사인 삼성전자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잡스는 프리젠테이션 화면 전면에 삼성의 로고를 띄운 채 "삼성은 애플을 따라 하는 카피캣(copycat)"이라는 독설을 날렸다. 삼성으로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지만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는 않았다. 공개 석상에서의 비난 발언에는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애플은 다음 달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특허 침해로 삼성을 제소했다. 결국 삼성전자도 맞제소로 대응했고 이후 삼성과 애플은 전세계 9개국에서 사활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이 시작됐을 때 애플의 일방적인 우세를 점치는 여론이 많았다. 삼성은 통신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통신특허들을 주무기로 내세운 반면 애플은 디자인 등 누구나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부분에 특허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제품에서는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표준특허'가 있어서다. 표준특허는 220볼트와 같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특허침해를 입증하기 쉬웠다. 물론 삼성전자는 통신 분야에서 표준특허를 다수 확보하고 있었다.

자신감은 결과로 나타났다. 삼성은 한국에서 열린 애플과의 첫 특허소송에서 표준특허를 앞세워 판정승을 거뒀다. 2012년 8월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1부는 애플이 삼성의 특허 2개를 침해한 사실을 인정해 4,0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애플은 특허 침해 1개에 2,500만원 손해배상에 그쳤다.

애플이 침해했다고 인정된 975특허와 900특허는 이동통신기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표준특허였다.

하지만 표준특허 위주 전략에는 불안요소도 있었다. 표준특허는 누구나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기 때문에 '다른 기업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원칙이 요구된다. 표준특허를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실제로 애플은 "프랜드 원칙이 적용되는 삼성의 표준특허는 애초에 특허침해 금지청구를 할 수 없는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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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이러한 애플의 주장에 대해 "프랜드가 그 자체로 표준특허의 허가(라이센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해당 특허를 사용하려는 자는 허가 요구를 해야 한다"며 "애플은 그런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특허침해가 맞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소송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이어진다. 서울중앙지법 판결 다음날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지방법원에서 나온 평결(배심원 판결)에서 삼성이 제소한 5건의 특허침해는 하나도 인정받지 못했다. 5건 가운데 2건은 표준특허였다.

2013년 10월에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직접 삼성의 표준특허 공세를 막아서는 일이 벌어진다. 삼성과 애플은 법원 소송과 별개로 준 사법기관격인 미국 무역위원회(ITC)에도 특허침해와 수입금지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ITC는 2013년 8월 '애플이 삼성의 통신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며 아이폰4 등에 대해 미국 내 판매금지 결정을 내렸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프랜드 원칙을 근거로 이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삼성이 표준특허를 남용한다'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제재를 받아 5년간 표준특허로 침해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배경에는 표준특허가 '특허'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측면과 '표준'으로서 모두에게 공유돼야 할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표준특허 위주 전략이 외려 발목을 잡는 결과를 불러오자 삼성은 표준특허를 빼고 소송을 거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에 이전과는 다른 특허로 침해금지 청구를 제기한 2차 소송에서 삼성은 상용특허 3개로만 승부를 걸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기한 2차 소송에서도 상용특허 2개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나온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에서는 특허침해가 모두 기각됐다. 재판부는 작성 중인 문자와 검색하려는 내용을 동시에 보여주는 화면 구성에 대한 기술(808특허)은 "1999년에 일본에서 비슷한 특허기술이 나왔다"고 밝히면서 특허 침해 청구를 기각했다. 화면 상단에 알림센터를 끌어내려 메시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646특허)도 "유사한 기술이 존재한다"며 같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 5월15일 나온 미국의 2차 소송 평결에서는 상용특허 1건에 대해 침해를 인정받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 배심원들은 삼성의 디지털 이미지와 음성기록 전송 관련 통신기술(449특허)을 애플이 베꼈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배심원 평결은 최종 판결에서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점과 미국에서 처음으로 '애플이 삼성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단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판결의 의미가 컸다.

법조계 관계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표준특허보다는 상용특허로 승부하는 삼성의 전략이 통한 것 같다"면서도 "특허 침해 입증이 상대적으로 쉬운 표준특허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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