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그리기·쓰기 접점에서 예술 혼을 보다

"현대미술 속 동양정신 조명"<br>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서 리히터·쿠닝·이우환 등<br>국내외 작가 59명작품 선봬

윌리엄드 쿠닝의 '무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무제'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추앙 받는 게르하르트 리히터(81). 그는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채색화와 단색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회화라는 매체를 재해석하면서 영역을 확장시킨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당대에 유행했던 팝아트와 모노크롬 회화, 추상표현주의와 포토리얼리즘과 긴밀하게 연결되면서도 상반된 방식으로 자신만의 문법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단순한 회화 기법에서 벗어나 선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주목해 추상표현주의의 백미를 장식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오는 5월 5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그리기와 쓰기의 접점에서'전에 선보인 리히터의 '무제'는 마치 작은 생명체가 기력을 다해 꿈틀거리는 형상을 뒤쫓기나 하는 듯 캔버스 전체에 끈질기면서도 고집스러운 생명의 힘이 묻어난다. 이 작품은 미술 경매에서 220만 유로(약 32억원)에 팔리며 작품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인정 받았다.

서예박물관이 현대 미술 속에서 살아 숨쉬는 서예 정신과 동양 미학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그리기와 쓰기의 접점에서'는 리히터뿐만 아니라 윌리엄 드 쿠닝ㆍ안토니 타피에스ㆍ얀 보스 등 세계적인 작가 작품 68점을 대거 선보인다. 여기에다 이우환ㆍ이응로ㆍ남관ㆍ박서보ㆍ김종구ㆍ이정웅 등 내로라 하는 국내 작가 11명의 작품들도 한 자리에 모인다. 참여하는 작가 수만 59명, 작품은 79점에 달한다.


이번 전시는 '선'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김애령 예술의전당 전시총괄디렉터는 "선이란 것은 인간이 처음 무언가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선은 그림이 되고 글씨가 되었다. 최초의 그림도 최초의 글씨도 '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선'은 인간에게 무엇이며 '그리기와 쓰기'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이번 전시의 주제 의식"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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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ㆍ지리적 구분을 넘어서 기호와 쓰기에 대한 작가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총 5개의 소주제로 전시를 구성했다. 먼저 '몸과 기호'에서는 글씨가 되기 이전의 행위와 그 흔적을 담은 작품이 갖는 물질적 존재감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윌리엄 드 쿠닝ㆍ오토 괴츠ㆍ게르하르트 리히터ㆍ이우환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모방과 창조'에서는 쓰기 예술의 전범이 된 동양 서예에 대한 동서양 작가의 존경이 담긴 작품이 망라된다. 츠언 단칭ㆍ로버트 마더웰ㆍ에두와르도 칠리다 등의 작가들은 모방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꾀하는 작업에서 동양적 미학에 경의를 표한다. '그려진 글씨'는 그림 가운데 삽입된 문자, 그림과 어우러진 글씨의 회화를 한 자리에 모았는데 현대 서예를 비롯해 또 하나의 서예문명권인 아랍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상상의 글씨'는 글쓰기의 형태와 행위는 지니고 있지만 읽을 수 없는 글씨 그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국내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 얀 보스나 사이 톰블리ㆍ안토니 타피에스의 작업이 눈길을 사로 잡으며 박서보ㆍ남관ㆍ이응로 등 국내 거장의 작품은 깊이를 더한다. 한편 서예박물관의 전시 및 편의 시설이 크게 낙후돼 있어 귀한 작품을 선보일 공간으로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된다.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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