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동양사태 누가 책임져야 하나


"투자자 고객 여러분, 그리고 동양가족 임직원 여러분,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동양 사태에 대해 내놓은 첫 코멘트다. 당연한 이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현 회장이 이메일로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한 건 지난 3일이다. 동양증권 노동조합에 따르면 현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은 2일 서울 을지로 동양증권 본점 대여금고에서 큰 가방 4~5개에 현금을 가득 채워 가져갔다. 속으로는 자기 돈 챙기면서 겉으로는 죄송하다고 사죄드린다니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현 회장의 입장 표명에는 "지금 저의 최대 과제는 투자자 피해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하느냐입니다"라는 부분도 있다. 결론을 잘못 내렸다. 그는 동양시멘트 지분을 담보로 1,569억원의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는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 투자자가 피해를 입을 것을 알면서도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이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으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동양 사태의 책임은 현 회장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그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고객을 잘못된 길로 이끈 동양증권 임직원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경제신문 기사(5일자 1ㆍ4면)를 보면 동양증권 임직원은 단순히 지시를 받아 소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한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짜인 사기극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고객에게 알리지도 않고 무단으로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서 고객 돈을 빼내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와 CP에 투자했으며 임의로 고객의 도장을 파 계약서에 찍는 범죄를 저질렀다.

경영진ㆍ금융당국 잘못도 크지만


동양증권 노동조합은 8일 현 회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번 사기극의 감독이 현 회장이면 주어진 대본을 넘어 상황에 맞춘 애드리브까지 소화해낸 출연 배우(임직원) 역시 고소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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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태를 보면서 아쉬운 것은 사전에 충분히 제어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미 동양그룹의 회사채 문제를 인지했던 금융당국은 올 4월 증권사가 투기등급의 부실 계열사 회사채를 인수ㆍ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 규정 개정안을 내놨다. 발행 규모가 커질 대로 커진 동양의 회사채와 CP 문제가 완만하게 정리될 수 있도록 시행까지 6개월의 유예기간도 뒀다. 연착륙을 유도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유예기간 동안 동양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적절한 조치만 취했다면 사태가 지금처럼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융당국은 동양 경영진에 회사채와 CP 발행을 자제하고 자산 매각을 서두르도록 독려할 수 있었다. 고금리를 좇아 몰려드는 투자자에게 위험을 알리고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하지 않은, 결과적으로 직무유기를 한 원인과 배경에 대한 관계당국의 조사가 필요하다.

동양 사태 이후 투자자들이 쏟아내는 하소연을 들어보면 참으로 원통하고 슬프다. 누구에게는 집을 살 돈이요 누구에게는 노후자금이었을 그런 돈이 어느 날 휴지로 바뀐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다. 10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투자자 집회에서는 "이 사태는 동양그룹의 문제가 아니고 정부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 시민에게 보상하라"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고금리 좇은 투자자 책임 가장 커

투자자들의 화난 마음은 십분 공감한다. 그렇더라도 문제는 이성적으로 풀어야 한다. 동양의 회사채와 CP에 투자한 투자자는 아직 피해자가 아니다. 손실을 봤을 뿐이다. 동양 사태로 인한 투자자 피해 여부는 앞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동양그룹 경영진의 사기 및 업무상 배임과 동양증권 임직원의 불완전 판매 등이 입증되면 그때 가서 투자자 피해액과 배상액이 확정될 것이다.

피해 여부를 가리기 전에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다. 투자에는 책임이 따른다. 투자자는 8%대 고금리에 현혹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 돈을 남에게 맡긴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동양 사태의 책임을 맨 앞자리에서 져야 할 사람은 무리한 투자를 감행한 투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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