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17일] 도플러

잠수함과 일기예보ㆍ임신진단에 공통점이 있을까. 그렇다. 수중 레이더나 기상관측, 초음파 진단기의 원리는 똑같다. ‘도플러 효과.’ 운전자들이 매일 만나는 과속감지 카메라, 스피드 건에 달린 센서도 이를 응용한 기기다. 미사일의 궤적을 추적, 요격 미사일을 쏘는 데도 같은 원리가 스며 있다. 박쥐가 어둠 속에서 나방을 낚아챌 수 있는 것 역시 내장된 천연 도플러 시스템 덕분이다. 우주의 영역을 규명하는 데도 도플러 효과가 쓰인다. 도플러 효과는 음향의 실제속도와 관측자가 느끼는 상대속도간 차이. 구급차가 다가올수록 소리가 커지는 경광음이 바로 앞을 지날 때는 작게 들리는 현상이 도플러 효과다. 빛의 전달에서도 이 원리가 통한다. 발견한 사람은 요한 도플러(Johann Doppler). 1803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평생을 형식적 교육풍토에 짓눌려 지낸 사람이다. 허약체질을 극복하고 수학과 물리학ㆍ기계학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의 꿈은 학자였지만 불우했다. 교수직에 번번이 떨어진 것. 당대 최고의 수학실력을 지녔어도 12시간씩 치러지는 작문에서 성적을 못 낸 까닭이다. 교수 자리는 32세에야 겨우 얻었다. 기술학교를 전전하며 기초산수를 강의하는 데 염증을 느껴 미국 이민을 결정한 직후다. 어렵게 따낸 교수직도 그를 괴롭혔다. 대학이 과도한 시험을 요구한 탓이다. 학생 526명과 하루 6시간씩 한 달의 절반가량을 면접시험으로 보낸 적도 있다.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선택은 휴양. 도플러 효과 등 학문적 업적은 이때 나왔다. 유명해진 그는 숙원이던 빈 대학 정교수가 됐지만 이미 건강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853년 3월17일 베네치아에서 단기 요양 중 폐렴으로 사망. 49세의 나이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