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동십자각] 원칙과 융통성

45센트 짜리 물건을 사고 1달러 지폐를 내면 주인은 먼저 1달러에 해당하는 동전을 금고에서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는다. 다음 순서는 45센트를 세어 자기가 갖고 난 후 46부터 다시 세 모두 1달러가 되면 그 나머지를 손님에게 준다. 이 가게주인은 거스름돈 「55센트」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1달러에서 45센트를 뺀 나머지 부분」을 돌려주는 것이다.초등학생도 훤히 할 수 있는 계산을 손가락으로 세고 있는 그들을 처음엔 「바보」라고 생각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은 연수차 미국에 살면서도 많이 경험했다. 집에 전기불이 나가 수리공을 불렀을 때 일이다. 수리공은 허리에 장비를 주렁주렁 매달고 손에는 빨강·노랑·초록 3개의 램프가 달린 검침기를 들고 들어왔다.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 검침기를 콘센트나 고장난 전등에 꽂는 일이다. 검침기를 꽂은 다음 단계는 주머니에서 작은 책자를 꺼내 검침기에 켜진 불과 비교하는 일이다. 모두 합쳐봐야 수는 6가지뿐인데 그 수리공은 그 것을 꼭 확인한 후에 수리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수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사람은 수리공이 아니라 프로그램된 명령만을 충실히 따르는 로봇이라는 생각 마저 들었다. 아마 우리 기술자였다면 한 번에 「감」을 잡고 10여분도 안돼 고장을 수리한 후 휘파람을 불며 돌아갔을 일이다. 우리나라 생산현장에서도 이런 차이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작업 지시서에 몇 번 나사를 10번 조이고 케이스를 조립하라고 되어 있다고 할 때 이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근로자는 많지 않다고 한다. 「감」으로 드르륵 나사를 박은 후 손으로 툭툭 쳐보고 「OK」사인을 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실 10번 조이라고 해놓은 나사를 9번 조이거나 11, 12번 조여도 제품의 품질에 금방 표시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한 쪽은 안정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반면, 한 쪽은 불량률이 높아 제품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국산 제품의 수출가격이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인이 상거래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자꾸 융통성을 발휘하면 상거래 질서는 무너지게 되고 이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다시 정부의 개입은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우리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빠져든 것이나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대형 화재사건, 옷로비 사건 등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이런 원칙을 무시한 채 발휘된 융통성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회와 도전의 새 밀레니엄 앞에 선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융통성이 아니라 「원칙에 충실한 바보」가 되는 것이다. 閔炳昊 인터넷부 차장 /BHM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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