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이웃 나라 중국에서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를 예고하는 중대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과 러시아가 시베리아산 천연가스를 앞으로 30년간 중국에 공급한다는 계약을 체결했고 시진핑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경제협력을 다짐했다.
지금의 중국은 5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미국의 세계 1위 경제국 자리를 넘보는 데다 자원·군사 대국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해 세계 정치경제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이미 알려진 대로 일본과의 기존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중·러 블록과 미·일 블록으로 크게 양분됐다.
강국 간 자원블록에 한국 위치 모호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속할 것인가. 정치 군사적으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현재 미·일 블록에 속하지만 외교·경제적 관점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향후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은 지금 미국식 자본주의 시대와는 다른 에너지 경제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미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에 시베리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공급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고 미국 역시 새로 개발한 셰일가스로 에너지를 수출하면서 세계 경제 패턴이 바뀌고 있다.
중국은 지난 30여년 동안 산업화되면서 에너지 수요가 폭증했으며 그에 따른 대기오염 문제는 자국 내의 영역을 넘어 한국까지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원자력·석탄·석유에 비해 안전하고 실용적인 천연가스를 원하지만 마땅한 공급처가 없었다. 세계 천연가스 수입국 1위는 일본이다. 한국도 세계 5위로 수요량이 만만치 않다.
지난해 푸틴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해 시베리아 가스관 설립과 시베리아 철로 건설에 대한 협력을 요청했었다. 당시 한국 외에 중국·일본 등의 국가에 비슷한 요청을 했다.
과거 구소련 시절에는 냉전 중에도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석유 관계기술 전수와 수출의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으나 레이건 대통령이 군비 축소 협약을 선결조건으로 거절한 바 있다. 시베리아 가스 수출은 러시아의 오랜 숙원이었으며 이제 푸틴 대통령이 소원을 성취하게 된 셈이다. 또 중국과 협력하면서 일찍이 소련이 이루지 못한 세계지도국의 꿈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가스도입 위한 남북협력 적극 모색을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위치에 서야 할까. 시베리아에서 중국·일본·한반도에 각각 별도 공급선을 깔아야 한다면 최소 40~50인치 직경의 파이프가 필요해 막대한 건설비용이 들어간다. 중국 지역은 완전 육로 매립이 가능하니 매우 경제적이지만 일본의 경우 사할린 군도에서 나오는 가스를 해저선으로 만들어야 하는 만큼 영유권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보통 육로 가스관 매립보다 가스를 현지에서 액화시켜 특수 수송선으로 운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경제·외교적 관점에서 보면 시베리아 가스보다 미국의 셰일가스 수입이 유리할 수도 있다.
한국은 대부분 제조업과 발전 영역에 가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시베리아 가스를 도입한다면 최선의 방법이 되겠지만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감안하면 단기간 실현되기 힘들어 보인다. 북한과의 협상 등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원이 없는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