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진단이 틀릴 수 있다’

경제를 다루다 보면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나타나곤 한다. 금리, 물가, 환율변동, 실업률 및 수출입 실적 등 각종 거시지표는 분명히 아무 이상이 없는데 경제 전반에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때 `경제의 심리적 변수`를 활용한다. 지금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확실하게 이해가 가지만 국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지난 1997년 전후를 되짚어보자.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촉발된 외환시장 불안정에 대해 당시 우리 정부는 경제성장률도 커다란 문제가 없었고, 기업들의 수출경쟁력도 탄탄했기 때문에 국제 금융계가 뚱겨주는 경고를 가볍게 취급했다. 비록 기아자동차, 한보철강 등 굴지의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로 휘청거렸다지만 그 정도의 난관은 예전에도 발생했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란 점에서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었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은 심지어 “한국은 태국과 다르다. 경제의 `펀더멘탈`이 좋아서 결코 국가부도사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만만하게 주변을 안심시켰다. 쉽게 말해서 별것도 아닌데 막연한 불안감에 겁먹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엊그제 이헌재 신임 부총리는 신용불량자 문제와 경기활성화 등 당면한 경제현안에 대해 “경제주체의 심리적 요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정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이에 앞서 최근 국제 사회 모두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원자재 파동`에 대해서도 하반기쯤이면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쳤다. 재경부 물가정책 담당 책임자 역시 “경제는 패턴”이라며 (언론이) 너무 호들갑 떨지 말 것을 주문했다. 계량화하기 힘들지만 경제 현상에 심리적 변수가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를 취급하는 주체들이 결국은 모두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심리를 안정시킨다고 해서 국가 외환위기를 비껴갈 수 있었을까. 지난해 초부터 시작한 `카드사태` 역시 금융기관이나 카드사용자들의 심리만 굳건히 다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까. `플라시보 효과(가짜 약)`는 가벼운 감기나 몸살을 낫게 할 수는 있지만 종양을 제거하거나 부러진 뼈마디를 붙이지는 못한다. 이 부총리로 대표되는 현 경제팀이 자칫 안이한 진단으로 치료 시기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김형기 산업부 차장 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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