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애매한 심사기준

경기에 가장 민감한게 서점이다. 서점이 불황이면 출판사들이 자연 도산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서점이 불경기를 타면 글을 팔아먹고 사는 문인들은그야말로 생존권의 위험수위를 실감할 수 밖에 없다. 경악할 일이다.IMF경제체제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문화비전 2000」을 위한 정부의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올해는 1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할애해 불경기를 극복토록 작가들에게 지원금을 내놓았다. 더러는 이를 사양, 가난해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면서 낙향하는 작가도 있었다. 그런데 며칠전 후원적격자 심사과정을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고, 이내 착잡한 심경이 되었다. 물론 사글셋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필자도 신청을 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넓은 아파트나 저택에서 여유롭게 사는 문인, 또는 부동산쪽에서 짭짤한 수입이 있는 문인이 끼었는가하면 연금 등으로 노후가 보장된 몇몇이 옥에 티(?)처럼, 단지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혜택이 주어졌다는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언제부터인가 외형에 치중해온 이러한 관습들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단지 손톱밑의 가시나 볼줄 알았지 위장이나 간이 썩어가는 데에는 별로 신경쓰지 못하는 안목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지원보다는 전통과 전문성이 축적된 철저한 조사내지는 여론수렴으로 심사에 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이러한 지원은 적어도 1회용이 아닌 천년 뒤를 내다보는 국가적 사업이어야만 한다. 세조(世祖)의 후원으로 편찬된 「동문선」이며, 그리고 「동국여지승람」같은 기록물은 성종(成宗)때에 와서야 이룩된 자랑스러운 민족 문화유산이 아닌가. 또 이탈리아의 도시귀족들이 학자·예술가들의 작품및 출판물을 구입하는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르네상스시대를 열게했던 선례만 보아도 예술인들에 대한 후원은 후손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조건없이 투자하는 차원에서 이룩돼야 할 것이다. 이번 문인 창작금지원의 졸속적이며 애매모호한 심사기준을 보면서 그러한 바람직한 풍토가 하루빨리 정착되었으면 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절감하는 바가 아닐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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