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천국의 비경과 전쟁의 상흔이 공존하는 곳

■ 북 마리나 제도 '사이판'<br>열강 4대국 점령 흔적 고스란히<br>마리아나 해구 수심 세계 최고<br>마나가하섬 산호초 레포츠 천국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을 사는 도시인들에게 남국으로 떠나는 여행은 영원한 로망이다. 낯선 곳으로의 탐험이기 때문일까, 잠시라도 일상을 잊고 원주민의 삶에 여유롭게 젖어 볼 수 있기 때문일까. 한국에서 약 4시간만 날아가면 열대 분위기에서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천혜의 휴양지 사이판에 도착한다. 연한 에메랄드빛에서부터 진한 옥색, 하늘을 머금은 사파이어 빛, 코발트 블루와 진한 잉크빛까지 수심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바다색은 동남아 해변과 비교할 수 없는 태평양만의 매력이다. 그러나 사이판에 남국의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지배의 흔적과 전쟁의 상처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섬 동쪽 원시림을 탐험하는 정글 투어를 선택하면 그동안 해양 휴양지의 이미지가 강했던 사이판의 숨겨진 역사와 매력적인 볼거리를 찾을 수 있다. 지배의 역사와 전쟁의 상처를 온 몸으로 안고 있는 땅 사이판 섬이 속한 북마리아나 제도는 마리아나 제도(괌 제외)에 있는 14개 섬 중 하나로, 전체 면적은 우리나라 완도만한 크기(185㎢)다. TV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이기도 한 사이판은 일본의 지배에 앞서 1521년부터 길고 긴 서양의 지배를 받아왔다. 포르투갈 항해사 페르디난드 마젤란에 의해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태평양의 이 작은 섬들은 1565년에 스페인이 영유권을 선포하고 스페인 왕후의 이름을 딴 마리아나 제도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300년이 넘는 피지배의 역사를 겪게 된다. 그 후 1899년 독일이 스페인으로부터 사이판 섬을 사들였고 1914년엔 일본이 독일로부터 넘겨받으면서 지배국가만 바뀌는 역사가 이어졌다. 일본은 이 섬을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농경지로 개발하게 됐고 당시 한국인들이 사탕수수 재배 노동자로 강제 징용돼 끌려왔다. 태평양 전쟁땐 한국 여성을 포함한 여성들까지 일본군 위안부로 이곳에 왔다. 결국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1987년까지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다가 미국의 자치령이 되었으며 지난해 11월 미 연방에 속하게 됐다. 스페인 지배의 흔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카톨릭 성지다. 지프차를 타고 섬 동쪽 원시림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만나는 것이 '루드르(노래를 부르며 신을 찬양하는) 마리아'라 불리는 성모상과 '산타'(신성한 물이라는 뜻)라는 성수다. 원래 민물이 나오지 않는 지역이었지만 스페인에서 온 신부가 예배를 드린 후 성모상 앞의 바위에 금이 생기면서 그 틈으로 물이 흘러 나와 '성수'가 됐다고 전해진다. 사이판에서 가장 높은 산인 타포차우(신이 축복한 땅이라는 뜻) 산은 해발 473m로 정상에 예수 그리스도상이 있으며 건너편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근대사를 붉게 물들인 전쟁의 상처는 섬 북쪽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반자이 클리프라고 불리는 '만세 절벽'은 사이판 최북단 사바네타 곶과 라구아 카탄곶 사이에 있는 절벽으로, 태평양전쟁 때 일본인 부녀자와 노인들이 미국의 제지를 뒤로 하고 만세(반자이)를 부르며 뛰어내린 곳이다. 반자이 클리프 뒤쪽으로는 자살 절벽이라 불리는 해발 249m의 마피산 북쪽 절벽이 보인다. 일본 군인들이 미군에 대한 투항을 거부하고 뛰어내린 곳으로 지금도 유골들이 발견된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도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온 1만 5,000여명의 한국인 넋을 위로하는 한국인위령평화탑이다. 위령탑 맨 위에 날개 짓을 하는 비둘기는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원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부산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사이판 남쪽에 경비행기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티니안 섬은 1945년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출발점인 공군기지가 자리하고 있어 한국민에게 의미가 남다른 곳이기도 하다. 천혜의 자연이 선사한 '신의 선물' 사이판에서는 역사 기행과 성지 순례는 물론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섬 동쪽 해변을 흐르는 태평양 한류의 영향으로 바람이 시원하고 동남아 지역처럼 날씨가 습하지 않은 점도 사이판이 자랑하는 매력이다. 대부분의 리조트가 밀집해 있는 섬 서쪽 해변은 난류성 바다인 필리핀해가 흐르고 있는데다 육지에서 바다로 300m 지점까지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흘러내린 지형이 이어져 수심이 얕다. 그래서 서쪽 해변은 다섯 가지 다양한 바다색을 만날 수 있는 휴양지로 선호된다. 반면 섬 동쪽 해변은 한류성인 태평양을 맞대고 있어 바다가 선명한 푸른색이며 파도가 해안 절벽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진다. 타포차우 아래 정글을 지나 동쪽 해변으로 나가면 타로포포(원주민어로 '신이 저주한 2인의 얼굴이 있는 바다') 해변이 있다. 이름처럼 해변 양편에 마주한 바위 형태가 남자의 옆 얼굴과 비슷한 이 곳에는 수심 1만 1,034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가 있다.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을 꼽는다면 사이판의 진주라 불리는 마나가하(원주민어로 '잠시 쉬어가는 곳') 섬을 들 수 있다. 1.5㎞의 섬 둘레 전체가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어 스노클링이나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 아름다운 산호초와 열대어를 볼 수 있다. 모터 보트에 연결된 낙하산을 타고 바다 위를 날면서 전망을 즐기는 패러세일링도 색다른 스릴을 전해준다. 우주인 헬멧 같은 유리관을 쓰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산책하는 바다 체험, 씨 워킹(sea walking)도 이색적이며 먼 바다로 나가 낚시를 즐기는 호핑 투어와 갯바위 낚시도 인기가 많다. 해양 레포츠를 두루 즐겼다면 ATV 오토바이를 타고 거친 산악을 달리는 레포츠도 해 볼 만하다. 캐피털 힐을 지나 타포차우 산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는 ATV 마니아에겐 스릴 만점이다. 어린이는 부모와 함께 2인용 '버기 카'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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