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세계 금융질서 재편)

◎국가주의적 발전모델 한계 증명/정부·기업 협조 정경유착 가져올 뿐/부실대출 금지 시장개방 골자/금융개혁 불가피동남아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한국를 거쳐 일본열도를 흔들고 있다. 이른바 아시아발 금융쇼크는 세계경제에 디플레이션 효과를 일으키면서 국제금융질서의 재편을 몰고올 조짐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도미노의 끝은 어디이며 아시아 호랑이들은 재기할 수 있을지 등을 시리즈로 분석한다.<편집자주> 지난 80년대말 일본 대기업과 은행들은 막강한 엔화를 가지고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할리우드의 콜롬비아 영화사를 사들이는가 하면,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 센터를 매입했고 하와이는 엔화 경제권에 넘어가 있었다. 그후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 금융시장은 굴지의 증권사가 폐업하는 등 소용돌이에 빠졌고 미국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을 앞세워 일본 금융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월 태국에서 발원한 아시아 금융대란의 태풍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거쳐 10월 홍콩에 북상했고 이어 한국을 휩쓸고 현재 일본열도를 공격하고 있다. 4개월의 짧은 시간에 전염병처럼 확산된 아시아 금융시장 붕괴는 세계 금융질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위기 신드롬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승리, 아시아식 가치의 패배, 이머징 마켓(신흥시장)의 동시 붕괴라는 결과를 낳았다. 또 오는 99년 유럽단일통화의 창설을 앞두고 미 달러화와 유로화의 팽팽한 대결이 예상되기 때문에 새로운 밀레니엄(1천년)을 앞두고 세계 금융질서의 재편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9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장기 호황을 지속하면서 미달러화는 국제시장의 지배력을 회복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독일 마르크화나 일본 엔화 대신 달러를 사들였다. IMF 통계에 따르면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 가운데 달러 비중은 90년대초 50%에서 96년말 현재 58.9%로 높아진 반면 이 기간 마르크화는 18%에서 14%, 엔화는 9%에서 6%로 낮아졌다. 이머징 마켓들은 자국 통화를 달러화에 고정시켜 외국 자본을 유치하려했다. 그러나 금융구조가 취약한 개도국들은 지난 2년여 동안의 달러강세를 따라가지 못한 채 핫머니의 공격에 노출당했던 것이다. 핫머니 성격의 국제 유동성 자금은 7년째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경제의 산물이며 현재 1조달러 이상으로 불어나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태국을 공격한 핫머니는 1백억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체 규모의 1%에 불과한 규모다. 결국 미국 자본이 중심이 된 국제 핫머니가 조금만 움직여도 이머징 마켓에는 대혼란이 오는 여건이 형성된 것이다.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돈 부시 교수는 『80년대엔 국제시장에 유동성 자금이 모자라 이머징 마켓이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90년대엔 유동성 자금이 넘쳐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금융시장의 혼돈은 아시아식 경제발전방식, 즉 아시아국가들이 모방해온 일본식 모델의 부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협조는 이제 정경유착, 관치금융의 부정적 면으로 부각됐고 고도성장은 거품경제로 바뀌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아시아 경제의 붕괴로 아시아식 가치가 수정되고 있다』면서 더이상 국가주의적 발전모델로는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식 경제구조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는 IMF다. IMF는 이미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수백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미국식 경영원리의 도입을 권고했다. 이들 국가는 금융시장 개방, 정치권과의 고리 차단, 부실대출 금지 등을 골자로 한 금융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이다. IMF는 일본에 대해서도 똑같은 주문을 하고 있다. 아시아의 위기는 브라질, 러시아 등 비아시아권 이머징 마켓에도 전염되고 있으며 러시아는 IMF에 구제금융을 지원해 달라고 협상하고 있다. 한국, 일본의 금융기관들이 부족한 자금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머징 마켓의 채권을 매각한데다 국제시장의 거대자본이 아시아위기 이후 이머징 마켓에 대한 투자 위험도를 줄이려는 추세에서 나온 결과다. 80년대말 공산권 붕괴가 서구 자본주의의 승리였다면, 90년대말 아시아 경제 위기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되고 있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창설이 미국의 독주를 꺾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제경제연구소(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유로화의 창설은 국제금융질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미달러화는 1차대전 이후 영국 파운드화의 자리를 빼앗고 세계를 지배한 이래 가장 큰 경쟁자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뉴욕=김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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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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