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6월 2일] MB정부, 국민 배신했나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이전의 인간 이명박은 살아있는 성공신화였다. 최고경영자(CEO)로서뿐 아니라 정치인이자 행정가로서도 그의 경력은 부단한 도전과 화려한 성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또 하나의 성공신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출범 100일을 맞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한마디로 실망이다. 치솟는 물가에 대한 불안이나 경제회복의 지연 정도가 문제는 아니다. 오렌지와 어린쥐로 회자되는 영어몰입교육, 고소영ㆍ강부자로 비난 받는 인사 방식, 한반도 대운하 논쟁, 그리고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의 처리과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나를 따르라” 식의 밀어붙이기에 국민은 실망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다. 결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도 되기 전에 국민에게 사과하는 입장에 서고 말았다. 대통령은 한편으로 국민을 야속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시장을 누비던 CEO로서 살아있는 영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건만 영어몰입교육 논쟁은 엉뚱하게 계층갈등 문제로 비화돼버렸다. 고르고 골라 유능한 인사들에게 중임을 맡겼건만 단순히 특정학교 출신이거나 재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비난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과의 우호관계 회복과 FTA 체결이 시급한 판에 일부 국민과 야당은 막무가내로 쇠고기 재협상만을 요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그밖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고심한 정책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가려져 아예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느낌일 수도 있다. 국민과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대통령의 반성에는 이처럼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데 대한 서운함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소통의 부족이 아니라 소통의 일방성에 있었다는 점을 대통령 스스로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일방적 소통은 홍보에 불과하며 상대방이 납득하지 않아도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는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은 나의 주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자세를 가지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쌍방적 소통이어야 한다. 국민의 소리는 하나가 아닐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은 정부의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소리는 무시되지 말아야 한다. 지금 국민이 이명박 정부에 느끼는 배신감은 바로 이처럼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기인한다. 미국 쇠고기는 안전한데 우매한 국민이 일부 불손한 세력의 주장에 현혹당해 공연한 걱정을 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곤란하다. 국민이 원한다면 일단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자세다. 대운하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설득하면서 추진’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포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출범한 지 100일밖에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이기에 비록 시행착오는 있었을망정 국민의 기대가 완전히 배신당한 것으로 믿고 싶지는 않다. 아직까지 경제 살리기라는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겸허하게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반대의 목소리를 보수언론의 악의적 왜곡이나 기득권 세력의 주장으로 매도함으로써 스스로 국민의 신뢰에서 멀어져 간 참여정부의 실패만큼은 되풀이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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