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부 생산성은 낙제점(국가정보화 전략:2)

◎공무원 PC보급 3명당 1대/그나마 10대중 6대가 386급이하/행정전산망도 부처연계안돼 “치명적”국내에서 한 건의 무역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무려 35곳에 달하는 정부기관의 행정처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2백개 가까운 항목을 기재하는 서류를 적게는 50건, 많으면 1백50건 준비해야 한다. 특히 각 서류에 기재하는 항목 가운데 20%는 공통항목이어서 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반복하여 써넣어야 한다. 이에 따라 연간 4백50만건의 수출입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약 3억건에 이르는 무역서류를 수작업으로 처리하고, 또 이들을 보관하고 관리하는데 불필요한 부대업무가 대량 발생하고 있다. 무역분야의 이같은 사례는 우리 기업이나 국민들이 정부 민원을 처리하면서 겪는 불편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민원인들은 각 행정기관들이 자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류조차 다시 제출토록 하는 일을 누구나 다반사로 겪는다. 「행정편의주의」라는 악습에서 자유로운 정부부처는 아무데도 없다.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행정기관이 「자기들 편하자」고 똑같은 서류를 또 다시 떼어오라고 한다. 민원인에게 서류를 반복해서 요구함으로써 국가기관에서 처리한 증명민원 발급량은 지난 88년 1억9천8백만통에서 94년에는 2억5천만통으로 26%나 증가했다. 기업과 학교에서 전산화·정보화에 따라 갈수록 종이 사용량이 줄어드는 것과는 달리 정부에서는 종이 사용이 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생산성은 이처럼 낙제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정부의 생산성이 낮음에 따라 국내 수출상품의 대외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등 우리경제의 고비용구조를 초래하고,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 과제를 이룰 만한 능력을 정부가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민간부문의 빠른 정보화 속도를 정부는 미처 쫓아가지 못한다. 「정보화지체」현상은 정부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공무원의 PC보급은 중앙의 사무직 3인당 1대 수준에 불과하다. 가장 기초적인 시설인 단말기조차 턱없이 부족한 형편에 전자결재, 전자우편 등 통신기능을 이용한 업무쇄신은 아직 요원하다. 더욱이 정부 보유 PC중 그나마 다양한 소프트웨어 구현이 가능한 486급 이상은 10대중 4대도 안되는 39.4%이고, 나머지는 「퇴물」취급받는 386급 이하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하드웨어의 보급이 아니라, 정보화에 길들지 못하는 행정조직의 오랜 관행이다. 최근 관리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전자결재 등 실질적인 전자업무처리를 위한 교육이 실시됐다. 그 결과 교육성과가 나타났다고 할 만한 공무원이 대상인원의 2%로 나타나 충격을 준 바 있다. 공무원의 정보화에 대한 마인드가 전혀 안 갖춰져 있다는 단적인 증거다. 총무처가 최근 전자결재시스템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 전부처에 보급했으나 실제 활용되는 경우는 극히 미미하다. 정부내에서 몇몇 부처장관들끼리 영상회의시스템으로 화상회의를 하는 등의 근사한 일이 이따금 벌어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시용에 불과한 실정이다. 아직 국민이, 기업이 행정현장에서 겪는 불편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67년 조사통계업무에 IBM컴퓨터를 도입, 행정정보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74년 정부전자계산소가 설립됐고 87년부터는 행정전산망사업이 추진되면서 행정의 정보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처별, 단위업무별로 추진된 나머지 정보의 연계와 공동활용이 구조적으로 되지 않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각 부처의 정보화는 일종의 「섬」이다. 건교부에서 이미 처리한 일은 통산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민원인들은 똑같은 일을 부처를 돌아다니며 반복한다. 정부는 이미 필요한 기본정보를 보유하고, 국민들에게 다시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마인드」 때문에도, 「시스템」 때문에도 「네트워크의 상호개방」이라는 정보화의 목표는 우리정부에서 기대할 수 없다. 정부가 정보화전략의 으뜸 가는 과제로 「전자정부」의 실현을 든 것은 그나마 만시지탄의 일이다. 열린 정부를 실현하여 원스톱으로 안방민원이 가능하도록 한다는게 그 목표다. 그러나 전자정부는 단순히 업무처리는 전자적으로 한다고 해서 이뤄지는게 아니다. 고객(국민)만족 극대화라는 궁극적 목적을 위해선 정부의 조직과 절차를 근본부터 바꾸는 대대적인 정부혁신이 관건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이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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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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