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명의 도용·차용 진료 뿌리뽑자


국적포기자, 재외국민, 불법체류 외국인 등 건강보험(이하 건보) 무자격자가 건보 수급권자의 이름으로 진료를 받아 건보 재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명의를 도용당하거나 빌려준(도용ㆍ차용) 진료로 적발된 건보재정 누수액은 27억원에 이른다. 명의를 도용당한 사람에게 진료비가 청구되는 게 아니어서 실제 누수액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미흡하다.

명의도용ㆍ차용 진료는 건보재정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민영보험의 보험금 누수도 초래한다. 실제로 타인의 건보 명의를 도용ㆍ차용한 진료로 민영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편취하는 보험사기가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보험사기는 타인의 건강보험증이나 주민번호를 도용ㆍ차용해 검진받은 뒤 진단이 확정되면 본인 명의로 거액의 보험금을 탈 수 있는 민영보험에 가입하거나, 특정 질병보험에 가입한 뒤 해당 질병에 걸린 지인이 자신 명의로 진료받게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건보재정 축내고 보험사기에 악용

명의도용ㆍ차용 진료는 요양기관(이하 의료기관)이 수진자의 본인 여부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국민건강보험법은 보험진료를 받는 수급권자에게 의료기관에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을 제출하도록 하고 명의도용ㆍ차용 진료를 받거나 이를 도운 수급권자에게 부당이득ㆍ과태료 징수 처분을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정작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수진자 본인확인 의무를 부여하지 않아 대부분 건강보험증이나 주민번호만 제시하면 본인확인을 하지 않고 보험진료를 해준다. 이러다 보니 타인의 건강보험증이나 주민번호를 도용ㆍ차용한 보험진료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과태료 등 처분 조항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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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부정 수급 및 건보재정 누수 가능성이 심각한데도 보건복지부의 대처는 상당히 미온적이다. 최근 건보 무자격자의 부정수급이 증가하자 복지부는 의료기관이 수진자가 건보 수급권자인지 확인해 보험진료를 하고 보험급여를 신청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수진자 본인확인 의무를 누락한 채 건보 수급권자 여부만 확인하도록 의무화하면 도리어 건보 명의도용ㆍ차용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의료기관의 수진자 본인확인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미국은 명의도용ㆍ차용 진료비용을 의료기관에 부담토록 하고 있어 의료기관이 수진자 본인확인은 물론 명의도용ㆍ차용이 의심되는 수진자를 자발적으로 통보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09년 11월부터 의료기관에 위험신호규준(Red Flag Rule)에 따라 수진자 본인확인 절차를 포함한 명의도용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도록 하고 있다.

병·의원 수진자 본인확인 의무화를

명의도용ㆍ차용 진료는 건보뿐 아니라 민영보험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폐해가 심각하다. 명의를 도용당하거나 빌려준 사람의 병력(病歷) 혼선에 따른 오진이나 보험금 지급거부, 민영보험 가입제한 등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명의도용을 당한 수급권자는 의료기관이 수진자 본인확인을 소홀히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의도용에 의한 진료'였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건보 명의도용ㆍ차용을 통한 무자격자의 부정 수급을 적발ㆍ방지함으로써 건보재정 누수를 막고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기관의 수진자 본인확인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기관이 수진자의 사진이 첨부된 신분증을 확인하고 최초 내원시 신분증 사본을 의료 사본에 첨부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의료기관의 수진자 본인확인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의료기관에 갈 때 사진이 있는 신분증 지참하도록 하고 명의도용 진료 인지 및 방지 방안을 적극 홍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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