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Culture & Life] 김언호 한길사 대표ㆍ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책은 미래 창조 원천… 콘텐츠 중심으로 부활시켜야"<br>문자 경시시대에 무거운 사명감<br>출판도시 종합캠퍼스로 만들어… 독서, 일상화하는 것이 목표<br>고서는 삶·사상 보여주는 문화재<br>세계 곳곳 책 수집 박물관도 운영



봄이 오는 한 켠에 여전히 쌀쌀한 바람이 부는 3월 말 파주출판도시의 한길사 사옥을 찾았다. 군더더기 없는 콘크리트 외벽을 드러낸 건물 맨 윗층, 계단을 돌아 들어간 '다락방'이 대표의 집무실이었다. 50평 남짓한 공간에는 온통 책과 자료들이었다. 한 구석에 놓인 책상과 소파ㆍ테이블 세트가 겨우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랄까. 서가며 바닥이며 책상ㆍ테이블을 포함해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오래된 문고판, 해외 화집, 잡지, 인터뷰 음성 테이프, 그림 등 미처 정리되지 못한 자료들이 빼곡했다. '책쟁이' 서가답다고 할까.

김언호(68ㆍ사진) 대표는 인사를 나누고 앉자마자 아주 작정한 듯 책 얘기부터 꺼냈다.


"문자 미디어의 부활이 필요합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영상과 디지털의 힘, 창조성도 진정성도 없는 정보 속에 짓눌리고 떠내려갑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정보가 너무 많고 그 가운데 깊고 높은 안목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다시 정리되고 체계화된 문장과 메시지를, 책을 젊은이들 손에 쥐어줘야 합니다."

그는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강조하는 미래창조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ㆍ정의ㆍ도덕ㆍ과학ㆍ기술ㆍ예술 등 모든 것이 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고 영화ㆍ뮤지컬ㆍ애니메이션 등 어떤 콘텐츠든 책이 그 가운데에 있다는 얘기다.

이어 "책이야 말로 미래를 창조하는 원천이다. 책을 만들고 읽고 나아가 쓰는 것. 이 세 가지 주체의 수평적인 연대를 고민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이른바 '조선ㆍ동아 사태'를 겪은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이다. 7년여의 기자생활을 마치고 잠시 방향을 모색하던 그는 이듬해인 1976년 한길사를 설립했다. 특히 1979년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포함해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조정래의 '태백산맥''함석헌 저작집' 등을 출간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크게 히트 쳤다. 이후로도 꾸준히 인문서적에 집중하며 현재까지 출간한 책만 3,000여권에 달한다.

1998년 한국출판인회를 창설했고 2005년에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조직해 동아시아 차원에서 출판·독서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파주출판도시 건설에 참여했으며 예술인마을 헤이리를 만드는 데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책 축제 파주북소리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요즈음에는 함석헌평화동산 조성과 함석헌국제평화센터 건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제 삶과 존재를 걸고 40여년째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길사에서 출간되는 책들이 주로 인문교양서 중심이라 다소 무겁고 어려운 내용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그런 책을 만들게 해준 그 시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는 그래서 요즘처럼 문자 미디어가 경시되는 시기에 더욱 사명감을 느낀다. 지식과 정보가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범람하는 것이 아니라 고급화돼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코미디 프로만 가득한 TV가 곤란하듯 당의정 인문학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쉽게 접근하는 책도 있고 어려워도 깊이 있게 진행되는 책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조금 인기는 없더라도 1권의 '슈퍼셀러'보다는 여러 권의 스테디셀러가 더 의미 있고 특정 연령층에 한정되기보다는 시민 보편적인 독서가 더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2월 말 3년 임기의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간 파주예술마을 헤이리 초대 이사장, 파주북소리 페스티벌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1960년대에는 공단을, 1970년대에는 고속도로를 만들었듯이 2000년대에는 출판도시 건설에 나섰습니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상징성과 존재감이 있습니다. 출판도시를 바탕으로 독서를 '일상적인 삶의 질서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 대표는 지난 10여년을 출판도시가 물적기반ㆍ공간을 확보했던 시기로 규정하고 다가올 10년에는 파주ㆍ경기도ㆍ한국을 넘어 아시아, 세계의 출판도시로 성장해나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출판도시 활성화를 위해 올해로 3년째 열리고 있는 책ㆍ지식 축제인 '파주 북소리'를 더욱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출판도시를 하나의 종합적인 캠퍼스로 만들겠다고 구상하고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방문해 서로 연계된 책 축제도 열고 파주와 부산에 각각의 분점도 교차 개설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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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출판도시 내 건물 50여곳에 북카페가 개설돼 있는데 올해 100여곳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도시 곳곳에서 아동ㆍ성인 콘텐츠와 원로들의 철학까지 폭넓게 인문강좌를 열고 저자와 독자가 만나 호흡할 수 있는 지식정보 공장, 하나의 광장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책의 위대한 가능성, 책의 시대를 다시 열어갈 것입니다."

한편 김 대표는 현재의 교육 풍조에 대해서 아쉬움을 내비쳤다. 독서나 토론이 사라지고 주입식 교육에만 치중하는 가운데 민관 할 것 없이 책과 사람을 떼어놓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사교육 광풍에 '책가방 없는 학교' 캠페인까지 나오면서 책과의 스킨십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책과 노트를 들게 하는 책가방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도서정가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잉 경쟁에 따른 가격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요즘 덤핑 판매, 집단번역으로 반짝 돈 버는 출판사들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는 출판도 아닙니다. 독자들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요즘 빠져 있는 취미는 고서 수집이다. 윌리엄 모리스의 '초서 저작집'을 포함해 전세계 각국에서 저마다의 삽화와 장정으로 출간된 '천일야화'와 구스타프 도레의 삽화집, 18~19세기 신문ㆍ잡지 등 목록도 다양하다. 이를 모아 한길책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윌리엄 모리스의 고서는 캠스콧 공방에서 나온 책 53종 66권을 2억원이 넘는 가격에 모두 사들였다. 김 대표는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기 위해 3년여간 지루한 실랑이 끝에 협상을 마쳤다. 그는 "이 책들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책이라고 평가 받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다음으로 아름다운 책"이라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고서는 그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보여주는 문화재로 아름답고 위대한 흔적입니다. 책 박물관도 이전 시대의 아름다움을 같이 독자와 즐기자는 취지에서 설립한 것입니다."

He is…

▲1968~1975년 동아일보 기자 ▲1976년~ 한길사 대표 ▲1984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사 및 상무이사 ▲1997년 서울출판인포럼 대표 ▲1997~2005년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 이사장 ▲1998~2002년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1998년~ 도서출판 한길아트 대표 ▲1999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1999년 북토피아 설립위원회 위원장
▲2005~2006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수석 부회장 ▲2005~2008년 제1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문화일반부문) ▲2005~2008 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이사 ▲2008~2011년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의장 ▲2009~2010년 파주출판단지 입주기업협의회 회장 ▲2011년~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2013년~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편집자 1000명 양성론

지식문화 창조 저수지 역할
과학기술자 대접하듯 키워야
독서인프라도 복지권… 도서관 10배로 확대 필요

이재유기자

"책은 초ㆍ중ㆍ고교 의무교육과 대학 고등교육 이후의 교육을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출판업계를 지원해줘야 합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지식 문화 창조를 위해 도서관을 10배로 늘리고 편집자도 1,000명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도서관을 현재보다 10배는 늘려야 합니다. 도서관 같은 독서 인프라는 동네마다 있는 보건소처럼 '복지권'에 해당합니다. 저마다 책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도서관에서 더 많은 책을 소장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맞구요. 서점과 도서관은 21세기 지식 인프라의 두 축입니다." "또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에 과학기술자를 대접했듯 에디터(편집자)를 육성해야 합니다. 좋은 출판은 국가의 가장 창조적인 인프라입니다. 임진왜란 전 '10만 양병설'처럼 지식ㆍ문화 창조의 저수지 역할을 할 편집자 1,000명을 양성해야 합니다."

편집자의 중요함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도 잘 묘사돼 있다고 강조했다. 영미권에서의 편집자는 스포츠로 치면 감독 같은 존재다. 편집자를 중심으로 작가, 변호사, 디자이너, 평론가, 마케팅 전문가 등이 한 권의 책을 만들어가는 구조다. 편집자는 작가가 가져온 아이디어와 초고를 근거로 회의를 거듭하며 완성도를 높여간다. 변호사를 통해 법적 소송의 여지를 없애고 디자이너는 책의 표지를, 평론가는 문학적인 조언을 한다는 것이다.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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