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드컵과 세계의 빈곤

지금 세계의 이목은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벌이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 집중돼 있고 우리는 그 축제의 한가운데서 억눌려있던 민족적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언제까지 갈지 모르지만 정쟁은 중단되었고 갈등은 봉합돼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월드컵 열기 때문에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 18일 발표한 '최저 개발국보고서 2002년'에서 우울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세계 49개 최저 개발국 6억4,000천만 인구의 일인당 소득은 80년 284달러에서 99년 현재 288달러로 불과 4달러 증가하는 데 그쳤고 이중 3억 이상은 국제빈곤선 기준인 하루 1달러 이하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세계가 고도로 성장했던 과거 30년간 빈곤 인구가 두배로 증가했고 현재 추세대로라면 2015년에는 4억2,000만명으로 1억명 이상 더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최저 개발국에 속하지 않은 인도나 중국에서 빈곤선 이하로 사는 사람은 수없이 많고 세계 은행은 98년 현재 빈곤선 이하의 인구가 약 12억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사실 세계 70여 국가의 90년대 실질소득은 60~70년대에 비해 더 낮아졌다. 발전이 아니라 퇴보한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상위 20% 부국이 세계 소득의 86%, 인터넷 사용자의 93%를 차지하고 세계 하위 20% 빈국의 소득비중은 1%, 인터넷 사용자수는 0.2%에 불과하다. 세계는 이미 양극화돼 있고 이 양극화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 사회에서 시장 논리가 경제활동과 사고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세계화는 더욱 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디지털, 지식, 정보화로 대변되는 현대 세계의 기술 환경에서 빈곤국가가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는 과거에 비해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최저 개발국의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세계 경제의 지속적 발전은 어렵다. 최저 개발국의 좌절은 세계 질서를 불안하게 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는 외형적으로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의 충돌로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저개발국들의 좌절이 있었다. 더구나 일본경제에서 보듯이 한 국가가 성숙단계에 들어서면 상품에 대한 소비수요 증가율은 급속히 둔화된다. 수요가 둔화되면 선진국들의 자국시장 보호의지는 보호주의와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최저 개발국의 발전을 통한 시장의 확대는 선진국의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를 인식한 선진국ㆍIMF 및 세계 은행은 개도국들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90년대 들어 최저 개발국의 부채를 탕감하고 개별 국가들이 빈곤감축 전략을 채택하도록 했다. 지난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4차 WTO 각료회의에서 선진국들은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고 새로 출범시킬 뉴라운드도 '도하개발의제'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그러나 선진국이나 국제기구가 부채탕감, 원조확대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최저 개발국들의 빈곤감축 전략은 빈곤에 대한 책임을 해당국가에 지우고 있고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정책이 최선인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도하개발의제의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최근 전개되는 미국이나 유럽의 보호주의는 뉴라운드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번에 월드컵 8강에 오른 아프리카의 세네갈은 99년 일인당 소득이 519달러로 49개 최저 개발국 중의 하나다. 20년 동안 세네갈의 일인당 소득은 고작 37달러 증가했다. 세네갈 국민들은 8강에 오르고 4강이 되면, 일시적으로 기아와 질병의 고통을 잊을 것이고 다른 빈곤 국가들은 세네갈의 성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공동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내일 직면할 삶은 과거의 그 삶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월드컵은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간 통로의 열림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잘사는 국가들의 잔치가 돼서는 안되고 더욱이나 허무하고도 이기적인 민족주의ㆍ국가주의의 고양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우리는 눈을 국내에만 두고 싸우고 미워하기보다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국가전략을 모색해 보고 세계에 대한 이해심을 넓히며, 특히 세계 빈곤문제에 대한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오늘 스페인과의 8강전을 맞아 시청 앞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게 될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는 공존의식과 세계와의 통로를 열어놓는 것이다. /박번순(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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