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5월 3일] 훈남과 好靑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에는 '호청년(好靑年)'이라 불리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훈남(훈훈한 남자)' 같은 신조어인 '호청년'은 좋은 집안 출신에 직장에서는 능력을 인정 받고 반듯한 외모를 지닌 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단어에는 우리나라의 훈남에는 없는 중요한 '관점'이 들어가 있다. 훈남이 자신이 보기에 훈훈해 보이는 남성을 가리키는 반면 호청년이라는 단어의 핵심은 부모님이 봤을 때 사윗감으로 좋은 남자라는 뜻이다. 자신의 이상형에 '부모님'이라는 관점을 넣은 이 복잡 미묘한 단어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할 만한 마땅한 단어가 없었기에 '호청년'이라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게 영화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조차 윗세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신조어는 최근 일본 젊은이들의 수동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튀지 마라' '남에게 해 끼치지 마라'는 교육 아래 자라온 일본 젊은이들의 수동적이고 개인적인 태도는 최근 영화계 곳곳에서도 묻어 나온다. 지난주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가케오 요시오 기네마쥰보 영화종합연구소장은 최근 일본 영화계의 경향을 소개하며 일본 젊은이들이 외화를 볼 때 자막보다 더빙을 선호한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해줬다. 프랑스처럼 원래 자막보다 더빙을 선호하는 나라도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최근 젊은이들이 자막을 보는 것을 귀찮게 여겨 더빙을 선호한다는 얘기였다. 또 그는 일본 내 홈비디오시장이 극장시장의 2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본의 극장관객이 과거 10억명 이상에서 현재는 1억6,000만명선으로 줄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극장에 찾아가 영화를 '공유'하기보다 집에서 혼자 보기를 더 즐긴다는 것이다. 영화 판권의 2차 시장인 홈비디오가 고사 직전인 우리나라의 형편을 감안할 때 일본의 이 같은 상황이 부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에 따른 시장상황을 부러워 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느라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꺼리는 일본 젊은이들의 태도를 보며 도전과 창의ㆍ연대가 없는 일본의 미래를 예상하는 사람이 기자뿐은 아닐 것이다. 영화 사요나라 이츠카에서 주인공이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을 하지만 수십년이 지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후였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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