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을 준공한 후 분양하는 후분양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 보고에서 제기되었던 후분양제도화는 대통령에 대한 건설교통부 업무보고과정을 거치면서 장기적 추진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 약 40년간 우리나라의 주택생산체계 속에서 신규분양주택시장은 주택의 절대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주택의 선매(先買)수요를 바탕으로 선분양방식으로 운영되는 전형적인 공급자 주도의 시장이었다. 현행 주택공급 제도상으로는 신규주택분양에 있어 후분양이 원칙이며, 제한된 조건에서 선분양이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주택부족과 주택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라는 조건에서 여유자금으로 주택을 서둘러 구입하려는 소비자와 주택가격의 80%에 달하는 소비자의 선납금으로 주택을 건설하는 공급자의 이해가 상통하면서 분양시장은 사실상 선분양이 주도했다. 이러한 선분양 중심의 신규 분양주택시장에서는 후분양은 거의 미분양의 동의어 정도로 인식되었다.
향후 후분양이 제도화된다면 이제까지의 주택생산체계의 변화는 크게 변화할 것이며, 신규분양주택시장의 양상도 소비자 주도의 시장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분양제도의 도입에는 몇가지 걸림돌이 가로 놓여 있다. 선분양과?후분양이 공존하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가장 큰 문제는 주택을 우선 건설하기 위해 주택건설사업자가 조달해야하는 돈, 소위 공급자 금융의 조달이 관건이다.
우리나라의 주택건설업체는 소요 자금의 36.5%를 주택 선분양을 통한 분양계약자의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조달하고 있다. 후분양이 제도화되면 계약금과 중도금을 대신 한 자금 조달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더라도 현재와 같이 공공과 민간이 연간 50만세대의 주택건설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필자의 추산으로 연간 약 27조 4천억원의 공급자 금융이 필요하다.
주택건설과 분양에 이르는 자본의 회임 기간을 약 30개월로 가정할 경우 총 68조 4천억원의 공급자 금융이 필요한 셈이다. 이러한 공급자 금융이 막대하기는 하지만 현재 금융권의 대출 여력으로 본다거나 총 50조원 규모에 이르는 국민주택기금의 존재를 감안하면 조달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작 문제는 주택건설자금이 확보된다하더라도 지난 40년간 선분양 방식 속에서 주택건설사업을 해왔던 주택건설업체로서는 신용부족으로 인해 자금의 융통이 쉽지 않다는 매우 심각한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다. 현재도 금융권은 건설업체나 주택건설업체 등에 대해서는 높은 대출 위험으로 인해 대출 순위를 최하에 두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생각하면 주택공급자 금융이 마련되어도 이를 사용하여 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신용을 갖춘 주택건설업체가 매우 제한되어 있어 주택건설물량의 감소가 우려된다. 현재 후분양제도의 도입에 대해 주택건설업체나 일부 전문가들의 반대와 우려는 바로 이러한 현실적 제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후분양제의 전면적인 도입보다는 부분적인 도입을 통해 소비자 선택의 기회를 확대하고 주택생산체계혼란에 따른 공급물량감소라는 우려를 최소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 방안으로서 국민주택기금과 주택건설업체의 자체 투입금이 합쳐서 80%를 넘는 경우부터 후분양제를 도입하여 시장에서 선분양과 후분양이 공존케 하면서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혀 주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입주자들이 공사가 끝나고 입주할 때 잔금으로 20%를 내고 있기 때문에 국민주택기금과 업체의 자체자금이 주택가격의 80%를 넘는 경우 후분양토록 해도 업계의 추가적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고 소비자의 선택성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주택후분양제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주장의 핵심은 선분양에 따른 주택건설업체의 모럴 해저드 즉, 부실공사와 같은 주택품질에 불안이다. 따라서 후분양제도 도입 논의과정에서 쟁점은 서둘러 후분양제를 제도화하여 주택생산체계를 마비시키고, 주택시장의 불안을 초래하는 것이기 보다는 후분양의 활성화를 통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과 주택품질의 향상을 통해 소비자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장성수(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